상림 아주머니 이야기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한 말. “결국은 어쩔 수 없어. 정직하거나 정의롭게 산다고 해서 인정받는 건 아니거든. 나 역시도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내 목표를 이루고 살 수밖에 없지. 물론 그 목표도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목표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그걸 바라는 한 그건 내 목표인 셈이니까.” 결국 대박이 나고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
오랜 만에 만난 친구가 한 말. “결국은 어쩔 수 없어. 정직하거나 정의롭게 산다고 해서 인정받는 건 아니거든. 나 역시도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면서 내 목표를 이루고 살 수밖에 없지. 물론 그 목표도 많은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목표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그걸 바라는 한 그건 내 목표인 셈이니까.” 결국 대박이 나고 성공을 하고 돈을 많이 […]
역설적이지만 눈앞에서 보란 듯이 벌어진 일이 가장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은 흔히 익숙해진 법칙이나 규제력을 벗어나 충격을 준다. 예를 들면 쓰나미나 대지진 또는 기상 이변, 또 9·11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참사는 왜 충격과 공포를 일으키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그 당시의 강도만큼 다시 떠오르지 않고 그 스케일만 남는 것일까?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미디어를 통해서만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기 확인’을 위해 겪어야 했던 고통이 소냐의 끝내 버림받지 않았던 삶에 대한 믿음으로 치유되는 결말은 감동적이다. 소냐는 불굴의 의지만으로 삶을 계획해 나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녀는 주정꾼 아버지, 페병과 분열된 자의식의 희생자인 어머니, 그 밑에서 가난과 슬픔에 짓눌려 살아가는 동생들을 위해 ‘황색 감찰’이 따라다니는 매춘부의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다. 소냐에게 그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에 태어나 1881년에 죽었다. 2년 뒤에 카프카가 태어났고 그는 1924년에 죽었다. 두 사람이 살다 간 시기가 약 100년인 셈이다. 19세기 초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이 격변의 1세기 동안 유럽과 러시아는 부르주아 혁명과 노동자·농민의 봉기, 군주정체의 반혁명과 몰락, 자본의 제국화와 거기에 맞선 사회주의 운동의 급격한 진영 재편이라는, 복잡하고 긴장으로 가득 찬 순간들을 통과해야 했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와 카프카의 악에 대한 태도 게시물 읽기"
만화와 동화로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친숙했던 이름, 돈키호테와 걸리버. 세르반테스와 스위프트의 각 작품의 완역본은 작중 인물들만이 아니라 작가들의 고된 인생 역정이 함께 깊이 새겨진 대작임을 충분히 알려준다. 『돈키호테』를 불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세르반테스는 갤리선의 노예 생활을 해야 했고, 레판토 해전에서 팔 한 쪽을 잃었으며, 인생 후반기에는 모함을 받아 쓰라린 고통을 겪기도 했다. 120여 년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