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블링 소녀
표준어는 ‘텀블링’이냐? 무시하고 일부러 ‘덤블링’이라고 쓰마. 지금으로부터 7년여 전, 아니 몇 년 전인지는 정확하지 않다만, 동네 놀이터에서 덤블링, 이른바 공중제비를 돌던 긴 머리 소녀가 떠오른다. 어리디 어린 것이 어디서 배운 재주인지 뒤로 갑자기 한 바퀴 솟구치더니 친구들 앞에서 재주를 뽐내고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뭐라고 재잘대는 것이 아닌가. 덤블링 소녀가 한바퀴 뒤로 돌 때 놀이터에 깔린 모래도 […]
지난 2~3년 사이 거리마다 장소마다 CCTV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주 대놓고 사람들을 촬영하는데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도대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첫째가는 원리는 개인의 사생활의 자유이거늘 정말 이러는 거 아니다. 구멍가게 주인들도 무슨 유행처럼 CCTV를 달지 않던가? 심지어 교회나 성당엘 가도 예배 행위가 다 기록되지 않던가. 정말 5~6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또 있다.
『생각 조종자들(The Filter Bubble)』, 엘리 프레이저 지음/이현숙·이정태 옮김(알키, 2011) 어느 때부터 구글검색 기능이 예전처럼 풍부하거나 다채롭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최근 구글은 개인 정보를 이메일, 유튜브, 구글 플러스 등 각 서비스마다 따로 관리하던 기존 방침을 변경했다. 계정 하나로 통합하고 민감할 수 있는 이용자의 여러 개인 정보와 검색 성향, 관심사 등을 활용해서 수집한 막강한 데이터베이스 연산 능력을 통해
미디어 홍수, 정보 홍수 시대에 책이라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형식의 매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물론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고 소비되는 문화 상품이라는 관점에서는 책을 위한 책, 글을 위한 글이라 해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수도 있겠다. 문자와 이미지의 소비 자체만으로도 독자는 흐뭇해할 것이고 그렇게 소비하는 상품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하나의 의식이 자리를 튼다. 시대의 지적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