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비로소 한강의 소설을 읽게 되는구나. 맨 먼저 읽은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출간되었으니 17년 전 작품이다. 2007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들었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좀 충격적이긴 해도 알쏭달쏭하면서 씁쓸한 느낌을 갖고 시간과 함께 지나쳤을 것 같다.

문학 평론가가 아닌 평범한 독자로서는 이 소설이 개인의 몸과 정신에 각인된 폭력의 양상을 뼈 아프게 폭로한 소설이고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운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물론 그 개인은 ‘순수’한 원자적 개인이 아닌 사회적 배경과 맥락 속에 놓인 우여곡절이 응축된 개인일 것이다.
1부를 읽고 나서 영혜의 극단적 행위와 그 주변 인물의 행태에 좀 충격을 받았지만, 그렇게 크게 감화될 만한 작품이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2부를 읽고 나니 영혜에 관한 연민과 형부라는 인물의 초라한 몰락이 겹쳐지면서 좀 어리둥절했다.
3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가 고기를 먹지 않고 저항하다가 아예 먹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이유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영혜의 언니 인혜의 삶의 궤적을 알고 나니 영혜와 그 가족과 흘러온 시간의 영상이 겹쳐지며 마음이 좀 복잡해지더만.
영혜의 아버지, 그녀의 남편, 영혜를 대하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 정신병원이라는 시스템. 그 모든 것들에 공통된 요소가 어떤 위압적인 힘, 즉 ‘폭력’이라 할 때, 채식주의자는 폭력이 한 개인에게 깊이 관철되었을 때, 그리고 그 폭력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존재의 투쟁이 서로 얽힐 때 벌어지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격렬한 소설이라고 읽혔다.
그런데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영혜에게 영혜 남편의 직장 회식에 모인 이들은 별도의 식단이라도 챙겨주지 않고 왜 속으로 냉소할까? 영혜의 친부모는 왜 구태여 고기를 안 먹겠다는 딸에게 채소나 곡물 요리를 챙겨주지 않고 강제로 먹이려 한 걸까? 그러한 강제 행위의 작품적 필연성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도 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가장 많은 것을 알려주는 인물은 영혜의 언니 인혜이다. 그리고 주인공 영혜에 대해서는 인혜보다 훨씬 적은 이야기만 한다. 영혜 남편은 그저 속물적인 평범한 남자다. 그런데 영혜는 잘 알아내기 힘든 인물이다. 남편은 영혜가 아주 평범한 여자여서 결혼했다고 말하지만.
영혜가 마침내 현실에서 얻기 힘든 인간의 존재 변형을 향해 투쟁하는 모습은 섬찟하기조차 하다. 이 시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정신에 새겨진 깊은 폭력의 기억 또는 상흔을 폭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