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이 끝나가는 밤이다. 1년 전 겨울은 악행의 도구로 전락한 권력을 탄핵하는 촛불이 덥혀준 열기로 따뜻했다. 종로와 광화문에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 목소리,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 거리 노점에 나붙은 “박근혜 구속하라” 푯말을 보면서 스스로 다짐했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박근혜를 권력에서 반드시 끌어내린다.’ 이런 다짐은 촛불을 밝힌 시민들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공유되었을 것이다.
만약 당시 촛불 시민들의 참여와 행동이 ‘새로운 혁명’을 예고했다면, 그 메시지는 내게 ‘권력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어와 박혔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프랑스 시민혁명,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만이 혁명이 아니다.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 한국에서도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시민 혁명이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고 다가오는 미래를 ‘함께’ 개척하기 위한 “평화, 연대, 평등”의 모델을 창조하는 작업이 바로 그 과정이자 내용이 되기를 기원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탄핵소추 위원장 김기춘이 한 말이 있다. “앞으로 우리 생에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여 년이 넘어 그 말이 철퇴가 되어 역사가 보복을 해버렸다. 김기춘, 최순실, 박근혜를 비롯한 국정농단 세력이 바로 그 말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처럼 근대와 현대의 온갖 모순이 압축적이고 동시적으로 전개되는 사회에서 정치 권력의 속성을 안다고 자부하는, 아니 착각하는 인간들이 함부로 말을 내뱉으면 역사와 시간이 보복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김기춘은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정부 3기가 시작되고, 이른바 ‘적폐’들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불과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건설사 사장 출신 이명박,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라는 인물이 대통령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벌여놓은 사태의 진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가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전개하고, 초법적인 일탈로 민주주의 시스템을 파괴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진상은 그동안 짐작해온 것 이상이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무책임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외교 무능, 좌충우돌하며 개성공단 폐쇄해버린 박근혜 식 자폐 정치의 진상도 밝혀지고 있다. 검찰, 경찰의 민주적 개혁, 재벌만능주의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해소하고 경제력 집중을 해산하는 것, 언론의 비판과 견제 기능을 마비시켰던 무식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새출발하는 것,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가속도가 붙어버린 빈부격차와 일자리 격차 해소 등등 과거를 청산하고 다가올 미래를 위한 기반을 복구하기 위해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결단력과 지혜가 필요한 한국 사회에서 지금 살아가고 있다. 향후 20년을 내다보는 이중의 혁명을 해야 한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어떤 거창한 정치적 문구보다는, 다만 일상에서 지난 한 해 남짓 몸과 마음에 각인된 강렬한 촛불의 기억이 현실에서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는 것이 새해의 바람이라면 바람이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는 차별과 배제의 사악한 문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온갖 군사주의의 망령들을 바로 촛불의 기억으로 태워 멀리 날려버리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남한,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각국 간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고 외교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사람들 간에 배제와 왕따가 사라지고 진정 연대하고 서로 존중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문화가 쌓여가기를 기원한다.
아울러 기후 변화가 점점 심각해지는 때에 고통을 겪는 가난한 국가들, 난민들, 농어민과 산골짜기 지역의 주민들과도 의미 있는 연대의 움직임이 시작되길 바라고,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이웃들이 치유와 건강의 기쁨을 얻고, 권력의 탄압으로 감옥에 갇혀야만 했던 이들, 그리고 빼앗긴 노동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오랜 세월 계속 싸우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 비정규 노동과 외주 하청 노동에 시달리다가 과로로 숨지고 사고로 숨진 분들과 그 가족들, 온갖 재난과 참사 속에 목숨을 잃은 이웃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진정 희망 찬 새출발의 시간이 되는 2018년을 기원하며 새해를 맞는다.
“2018년은 평화, 연대, 평등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01.01, 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