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이 소설에서 자주 묘사하는 눈, 바람, 나무, 바다, 어두운 밤은 작중 화자인 나(경하)의 감각을 깊고 때론 고통스럽게 파고 든다. 이따금 다가오는 위경련을 동반한 극심한 통증과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듯하다. 그 감각과 고통은 사실은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 버린 탓이 아니겠는가.
인선이 겪는 고통은 자매처럼 가까워져 버린 작업 동료 경하의 그것보다 더 크다. 경하가 꾼 꿈을 형상화하기 위해 거친 목공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려버린다. 신경이 죽지 않으려면 3분마다 바늘로 봉합된 손가락 상처 부위를 찔려야 하는 극단의 고통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야말로 인선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 강정심은 어린 시절 제주 4.3 항쟁 당시 실종된 오빠에 대한 행방 추적의 투쟁 속에서 평생 안간힘을 쓰다가 마침내 들이닥친 치매와 싸우다 세상을 뜬다. 인선이 그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의 고통도 참으로 컸다.
인선이 키우던 새는 경하와 끊일 듯 이어지는 불안한 연결이자 삶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긍정 같은 것 아니겠는가. 인선이 병원에 입원해 사투를 벌이면서 경하에게 병실을 떠나 밤이 오기 전에 제주도 집으로 가서 새 ‘아마’를 돌봐달라는 감당하기 힘든 부탁을 한다. 눈보라를 뚫고 비행기를 타야 하고, 험난한 산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드는 그 여정을 하루 안에 끝내야 한다니, 인선은 왜 경하에게 그런 부탁을 했을까?

어쩌면 인선은 자신의 죽음을 짙게 예감했고, 경하가 자신의 집에 도착하면 그동안 말하지 못한 사연과 비밀을 망자로서 살아 있는 영혼의 형상을 빌려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확신했는지도 모르겠다. 경하가 사나운 눈보라와 나무숲과 산길을 헤치고 인선의 집에 도착하는 과정은 쇠약해진 그녀의 몸 상태를 생각해 보면 너무 모험적이고 위험한 도전이다.
둘은 결국 어두운 밤의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중턱, 인선의 집에서 만난다. 꿈일 수도 있고, 죽은 이와 산 이의 특별히 허락된 시간일 수도 있다. 어둔 밤 촛불 하나에 의지하여 인선 집안의 내력과 그녀의 어머니에 얽힌 진실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 펼쳐진다. 작중 화자인 나, 인선, 인선의 어머니 모두 육체적 통증, 질병, 불행한 사고로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빠져야 했고, 그 고통이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뚫고 진실로 안내해 주었다.
작가 한강도 이 소설을 쓰면서 그 고통과 싸우며 힘겨웠을 법하다. 작가적 상상력만으로, 단편적인 진실 몇 조각으로 어찌 인간과, 역사와, 삶의 진실로 파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건 정말 도전적인 일이고, 피곤한 일이고, 고통이고, 결국 투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제주도 사투리로 중요한 대화들이 재현된다. 독자들에게 그 느낌이 어느 정도로 전달될 수 있을까? 또 그걸 외국어로 번역하려면 가능할까? 그것도 참 딜레마일 것 같다. 그런데 제주도 방언이기 때문에 인선과 인선 어머니의 이야기가 더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제주 사투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더더욱 울림이 있는 소설일 수도 있다.
『채식주의자』도 그랬지만, 『작별하지 않는다』역시도 초반, 중반까지는 좀 힘겹게 인내심을 갖고 읽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독자인 나를 휘어잡는 작품인 것 같다. 인생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봐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