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1980년대, 햇살, 민주

전두환이 죽었다. 반성의 표명 없이 90살까지 살다 갔다. 시신도 못 찾은 희생자들, 자살한 이들, 정신이 나가버린 피해자들을 두고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떴다. 정말 어떨 때 역사는 불공평하고, 하늘도 불공평하다. 하지만 신은 억울한 이들의 한을 반드시 갚아주신다고 믿는다.

한국 민주주의운동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점으로 갈라지고 또다시 통합되었다. 이전과 이후의 모든 사건들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처절한 비극이었고 피울음이 땅을 적셨지만, 그 땅을 비추는 햇살이 한국인의 자의식을 일깨웠다고 생각한다. 그건 박제된 어떤 이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한층 원초적이고 심층적인 어떤 것이다. 광주 시민군이 계엄군의 총칼과 무자비한 학살에 맞서 부모, 형제와 자매, 지역사회와 나라를 위해 총을 든 것 또한 바로 그러한 원초적인 윤리의 각성에서 나온 투쟁이고 실천이었다. 그 자의식에 대한 표현과 언어가 여러 층위에서 알게 모르게 1980년대를 지배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이 권좌에 들어앉는 장면을 거의 모든 사람들은 침묵 속에 지켜봐야 했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어느 누구든 어두운 기분과 불안한 감정을 떨치지 못했을 것이다. 철부지 어린이들 중에도 예민한 아이들은 ‘저 사람은 누구지? 왜 갑자기 TV와 신문과 라디오에서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하지?’ 하고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다. 박정희가 죽고, 그를 죽였다는 김재규라는 사람이 흰 수의를 입고 뉴스에 나왔다가 사형에 처해졌다 하고, 영문을 알 수 없고 뭔가 어수선한 느낌으로 텔레비전을 보던 때에 군 제복을 입고 종종 등장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체육관 같은 데서 박수를 받고 웃던 그 영상.

당시 내 주변에 전두환을 대통령이라 부르던 친구들은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도 전두환이라는 이름은 별로 거론한 적이 없었던 걸로 나는 기억한다. 그냥 우리 친구들 사이에 그는 ‘전 문어 대가리’ ‘전 대갈’ 같은 별명으로, 아니면 전두환-이순자 부부로 불리며 풍자적 우스개 이야기 소재로 삼곤 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한 해, 두 해, 몇 해가 지나면서 거리에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참혹한 사진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 많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전두환은 나쁜 놈’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1980년대의 햇볕을 회상해 본다. 물론 2021년 기후변화와 코로나 우울에 걸린 지구촌의 스산한 날씨와는 달랐다. 사계절이 지금보다 뚜렷하고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고, 여름이면 동네 가게에서 하드와 쭈쭈바를 사다가 빨아먹고 미숫가루를 타서 얼려 먹었다. 봄과 가을에 학교 소풍을 갈 때, 사이다와 삶은 계란과 과자와 김밥을 배낭 주머니에 넣고, 근심 어린 표정의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한켠에 안고서, 그렇게 갔다 오곤 했다. 즐겁긴 했지만 왠지 쓸쓸하기도 했다.

학교 수업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벤치에 앉아 지쳐서 쉬었을 때 받았던 햇살, 그 당시는 그저 따뜻한 햇살일 뿐이었다. 그 햇살 속에 바로 광주의 오월에 죽어간 분들의 영혼들이 서려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때의 기억에 생기를 불어넣는 마음으로 윤선애 씨의 노래 <민주>의 가사를 새겨본다.

<민주> (노랫말 신경림, 가락 안혜경)

너는 햇살, 햇살이었다/ 산다는 일 고달프고 답답해도/ 네가 있는 곳 찬란하게 빛나고/
네가 가는 길/ 환하게 밝았다

너는 불꽃, 불꽃이었다/ 갈수록 어두운 세월/ 스러지는 불길에 새 불 부르고/
언덕에 온 고을에/ 불을 질렀다

너는 바람, 바람이었다/ 거센 꽃바람이었다/ 꽃바람 타고 오는 아우성이었다/
아우성 속에 햇살/ 불꽃이었다

너는 바람, 불꽃, 햇살/ 우리들 어둔 삶에 빛 던지고/ 스러지려는 불길에 새 불 부르는/
불꽃이다 바람이다 아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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