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신분을 벗고 정치에 투신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로를 놓고 여론과 논란이 분분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윤석열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 진보이고 무엇이 보수인지를 가늠하는 정치 토양을 확립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진영 논리를 떠난다는 강박관념에 갇혀 안철수처럼 공허한 중도 노선을 추구하다 이도 저도 아니게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윤석열은 경제-외교-노동-복지-사회 안전-법치-정치 시스템의 심화 발전 면에서 개혁 보수 노선을 추구한다는 유승민보다는 좀 더 왼쪽, 그리고 진보적 대중정당(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정의당 계열 및 기타 세력)보다는 좀 더 오른쪽에서 출발하여 한국 정치에 기여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 점점 더 빈약해지는 한국 정치의 진보-보수 대결이라는 허상을 깨뜨리는 일이고, 한국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실제로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당장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중요한 정치 의제들의 실체를 사람들이 각성하기 시작하면 정계 개편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2024년 총선에서 정계 개편의 성과가 나타나면 윤석열은 성공한다. 그렇게 되면 무책임, 무능, 내로남불, 권한 남용과 직무 유기로 천금 같은 4년의 시간을 흘려 보낸 현재의 민주당은 해체된다.
나는 2013년에 국회에서 증언했던 검사 윤석열이 지난 9년여 세월 동안 겪고 보여준 장면들에 한국 사회의 많은 코드가 숨어 있다고 믿고 있으며, 거기에 진짜 진보, 진짜 보수의 윤곽을 추출할 수 있는 시사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르면서 윤석열의 집안 내력과 주변 지인 관계들까지 소개해 가면서 언론들이 스토리 텔링 하는 것은 정말 비본질적인 것들이다. 언론들이 자기들 프레임에 가두어 두고 싶은 욕망의 덫에 걸리면 안 된다. 공인으로서 윤석열이 보여줬던 면모가 어떻게 정치와 연결되어 한국 사회 미래를 열 수 있는지를 노선으로 정립하여 한국 시민사회에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이재용 석방이 거론되니까 사면하면 욕 먹을까 봐 민주당은 가석방 가능성을 흘리고, 반도체-경제 프레임에 갇혀서 언론과 시민사회는 제대로 비판도 못 한다. 적폐 청산을 하려면 이재용은 총수 자리를 내놓고 사법적 처벌을 받는 상태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회계 조작 혐의에 대해 법정에서 해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봐라. 그토록 검사들이 수사하고 기소해서 끌고 온 과정을 정치권이 나서서 봐주기 여론을 조성하고 적잖은 시민들이 거기에 동조하는 거 아니냐? 이렇듯 한국 사회는 진보할 기회를 줘도 당장 닥치면 두려워하고 다시 후퇴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대통령이 기업들 총수 만나 행사장에 가서 하는 말은 도대체 기업 회장인지 대통령인지 구분이 안 간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을 감방에 보내고 그 중 한 명은 공직에서 파면을 시켰지만, 한국 사회 시민들은 그 에너지를 엉뚱한 데 낭비하면서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기는커녕, 서로 힘자랑을 하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가히 그 양상은 폭력적이고 오로지 내가 옳다는 심리적 전염병에 일상이 노출되어 있다. 정말 씁쓸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2021년 6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