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각하 판결은 매우 부당하다

법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국내외 환경의 반영인데 주권 면제라는 국제 관례를 이번 판결에서 인정해 버린 것은 안이하다.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우선시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부당하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때 그 개인은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하여 보호받아야 할 인격체이고, 게다가 어느 한 나라가 전쟁 범죄로 가한 반인도주의적 만행인데 당사국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어떻게 주권 훼손인가?

예를 들어, 미국 법원은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거액의 배상을 인정했고, 엊그제 한국 법원은 경문협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포로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당한 피해자에게 북한 정부 대신 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미국에 대해 북한도 주권이 있고, 얼마 전에는 양국 정상이 국기를 걸어놓고 회담까지 했던 관계이다. 유엔 가입국인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서도 사법적 주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러면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주권 면제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과 한국의 법원은 왜 국제법을 존중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렇듯 주권 면제에 관한 국제법 관례라는 것도 상대국이 누구냐에 따라 달리 적용될 수 있는 불안정한 판례일 뿐 철칙은 아닌 것이다.

이번 위안부 2차 소송에서 법원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정치외교적 피해자 구제 조치가 부족하나마 이뤄졌다는 점을 내세웠는데, 이번 소송의 당사자들은 일방적 합의를 거부하고 위로금을 수령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피해자들의 피해 내용은 극적이고, 막대하고, 구체적이지만, 이를 반박하는 국가에 대한 주권 면제 규정은 매우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1차 소송은 원고 측 승소로 확정되었는데, 이미 대중들도 다 알고 있는 달라진 사정과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이번 판결은 매우 부당하다.

문제는 강제징용 판결 이후 현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무능과 안일한 대처로 다시 귀결된다. 일반 대중이 알지 못하는 나름의 노력을 어떻게 기울였는지는 몰라도, 사법부의 판결이므로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설익은 1+1+α 같은 제안으로 반발이나 사고 민족주의 감정만 자극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냔 말이다. 국내 언론들도 피해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제발 좀 자문해라. 맨날 무슨 전망만 하고, 전망하면 다 틀리고, 전망하기 힘드니 파헤치지도 못하고, 자국의 위안부 운동가를 폄훼하고 프레임으로 혐의를 씌워서 자학적인 보도를 경쟁적으로 하니 이런 모순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소송 각하 판결에서도 재판부는 일본의 범죄 행위가 조선총독부가 군대의 요청으로 행정조직을 이용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행사한 결과라고 언급했으니, 반인도적 전쟁 범죄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항소심을 통해 피해자의 권리가 인정되도록 이번 각하 판결은 바로잡혀야 한다. 아울러 강제징용에 관해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은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일본 기업을 상대로 그대로 집행해야 할 것이고, 위안부 소송 판결 역시도 계속 진행하면서 장기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소련 진격을 준비하기 위해 관동군 특수대연습을 전후로 당시 조선의 많은 어린 여성들을 때로는 강제로, 때로는 민간업자까지 동원해 속여 가면서 끌고 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성적 학대와 고문, 죽음, 평생 지우지 못할 상처를 가했다. 이 역사를 재조명하고 알아가지 못하면 한국인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고, 일본인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후손으로서 해야 할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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