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법 앞의 만인 평등’이라는 원칙이 그저 교과서의 문구가 아니라 복잡다기한 현실에 적용되는 것이 법치주의다. 2016년에 폭로된 국정농단 범죄, 촛불 시위, 그리고 이후 새 정부 들어 4년 넘도록 시민사회는 바로 그 원칙의 구현 과정을 몸소 겪지 않았던가. 위임된 권력의 남용과 고도의 경제적 범죄 행위가 긴밀히 얽혀 있는 현실 속에서 법의 심판이란 것을 위해 수사-기소-공판 과정의 전문성과 소명감이 얼마나 필요한지 생생히 체험했다.
수사와 기소와 공판 유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일관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국가의 법적 정의 실현이라는 기능 면에서 볼 때, 검사는 형사소추권의 담당자로서 이 유기적 과정의 과잉은 막고 부족은 보완하면서 증거를 확보하고 공판으로 입증하는 지휘관이다. 그 경험이 쌓이고 정비되어 수사의 전문성이 높아짐으로써 국가의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검사의 수사권을 박탈한다면, 범죄의 실체 규명 첫 단계인 수사 단계부터 법 적용의 유기적 긴장관계가 깨지고 부실 수사나 과잉 수사로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만연할 것이다. 강자에게는 비싼 변호사가 있지만, 약자에게는 그저 높은 성벽에 가로막혀 접근할 수 없는 카프카의 ‘성(城)’만이 버티고 서 있을 뿐이다.
수사하지 못하는 검사는 일개 공판 담당 공무원에 불과하므로 충실한 봉급쟁이로 자리나 연명하고 말 뿐일 것이고, 자리 보전을 위해 때로는 본인도 마땅찮은 법적 공방에 나서야 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사법 카르텔의 유혹에 휘말려 또 다른 부패에 연루될 수도 있다. 이것은 물론 검찰 제도의 파괴이며 정의의 구현체로서 국가는 민주적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런 때가 오면 시민사회와 국가 간의 한판 대결이 벌어져야 하고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
결국 근대 형사사법제도를 도입한 한국 민주주의의 70년 넘는 역사 이래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피로써 쟁취한 민주주의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반동을 몰고 올 것이다. 중대범죄수사청과 검찰 수사 기능 폐지에 찬성하는 국회의원, 정치 세력, 이데올로그 행세자들, 그 추종 집단과 언론 매체들이 있다면, 이러한 역사적 반동의 흐름에 함께 하겠다는 세력들이니 강렬한 심판을 가해야 한다.
이러한 견해에 근거하여, 나는 검찰 개혁이라는 의제를 두고 지난 4년여 경험을 통해 현직 윤석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한 견해가 집권 세력인 민주당과 청와대의 검찰 개혁 담론보다 진보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러운 자 되어 조국을 등질 수 없다면,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하여 현 사태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힘을 모을 때이다. 오늘 «국민일보»의 인터뷰에서 밝힌 윤석열 총장의 견해들 가운데 주목한 부분을 나열해 보자.
– 국가 전체의 반부패 역량 강화, 수사와 기소가 일체되어야 한다. 경찰이 주로 수사를 맡더라도 원칙적으로는 검·경이 한몸이 돼 실질적 협력 관계를 갖춰야 한다.
– 지능화, 조직화, 대형화하는 중대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
– 법 집행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란 결국 재판을 걸어 사법적 판결을 받아내는 일. 수사는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 수사, 기소, 공소유지라는 것이 별도로 분리될 수 없는 것. 법정에서 공방을 벌인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된 수사도 할 수 있고 공소유지도 할 수 있는 것. 경험이 없다면 가벌성이 없거나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기 어려운 사건까지 불필요하게 수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권 침해.
– 거대한 이권이 걸린 사건들일수록 범죄는 교묘하고 대응은 치밀하다. 수사와 공소유지가 일체가 돼 움직이지 않으면 법 집행이 안 된다고 단언. 지금 검찰을 정부법무공단처럼 만들려 하는데, 이는 검찰권의 약화가 아니라 검찰 폐지다.
– 1년에 몇 건에 머무르는 검찰의 중대범죄 수사가 그간 국가의 부패 대응 역량 좌우. 경제범죄 등 권력형 비리는 처음엔 증상을 잘 못 느끼고, 뭔가 느낀 때에는 이미 회복할 수 없게 되는 중병.
–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처음으로 처벌. 뇌물죄만 처벌했고 정치자금법은 사실상 사문화된 시기에 정치자금법의 정치자금 부정수수죄의 처벌 조항이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고쳐졌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결과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 관여 행위를 처벌하는 공소시효가 6개월에서 10년으로 늘어났다.
– 저축은행들이 고객 예금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어 개발 시행 사업에 뛰어들던 때 수조원 공적자금 손실. 검찰 수사로 상당한 중형 선고 후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경영평가위원회 설치. 법정관리 직전 기업어음을 발행하는 사기범죄도 대기업 수사 결과 사라졌다.
– 범죄가 구멍을 파고들수록 검사들이 법정에서 체득한 다양한 소송 경험으로 대비해야 한다. “그 법정 경험이 수사력이고 국민적 자산”
– 정치·자본권력들에 대한 비리 수사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일. 권위주의 군사정부에서 문민정부로 가려 한 것이 과거의 민주화운동이라면, 그 다음의 민주주의 발전은 곧 법치주의의 발전.
–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를 포함. 힘 있는 사람도 범죄를 저질렀다면 똑같이 처벌받고 법이 공평하게 집행되어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문민정부 이후 검찰의 반부패 활동이 우리 사회 특권을 없앴고,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 진보를 표방하는 정권의 권력자나 부패범죄를 수사하면 따라서 그것이 보수인가? 재벌이나 정치인이 형사처벌 받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이 형사처벌 받는 것을 국민이 직접 목격하기 시작하면서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보통 시민의 권리의식이 고양. 이 ‘리걸 스탠더드’가 사회를 진일보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 어떤 경우에도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부정하는 입법례는 없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사법 선진국은 대부분 중대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한다.
– 영국의 SFO를 모델로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든다는 주장: 진실을 왜곡하거나 잘 모르고 하는 말. 영국이 국가소추주의 도입 이후 SFO를 만든 것도 범죄가 나날이 지능화, 전문화, 대형화하자 검사가 공소유지만 하는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한 일.
–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 재직 시절 미국 반독점국 방문. 총 700여 명 중 300여 명의 검사가 카르텔 범죄애 대해 대배심 등을 통해 직접 수사 담당하고 있었다.
–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폐지: 불이익을 주고 압력을 넣어도 검찰이 굽히지 않으니, 이제는 일 자체를 못하게 하겠다는 것.
– 검찰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폐지하려는 시도. 치외법권 영역은 확대될 것. 보통 시민들은 크게 위축되고 자유와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할 것.
– 국민들께서 관심을 가져 주셔야 한다. 형사사법 시스템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서서히 붕괴될 것.
– 검찰이 필요하다면 국회에 가서 설명을 하기도 하지만 국회와 접촉면을 넓힌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될 일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
– 비대한 검찰권이 문제라면 오히려 검찰을 쪼개라고 말해 왔다. 다만 검사와 사법경찰 수사관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형사사법 시스템이 무너진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부패한 권력이 얼마나 국민을 힘들게 하는지, 우리 모두가 똑똑히 봤다.
– 전국의 검사들이 분노하며 걱정하고 있다. 국민들께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국민 여러분의 이해와 관계되는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학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의 심도 깊은 논의, 올바른 여론의 형성만을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