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사면을 함부로 논할 자격은 못 된다

박근혜는 현직에 있다가 파면된 후 재판 받아 감옥에 갇혔고, 이명박 또한 퇴임 후 중대 범죄가 드러나 감옥에 갇혔다. 둘 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의 뇌물 수수라는 정경유착 범죄로 심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권력을 남용하고 사유화하면서 법정에서의 유죄로도 설명되지 않은 여러 잘못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전직 대통령들이다.

두 당사자들은 물론이요 탄핵 결정문을 읽던 이정미 판사도,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도, 현재의 집권 세력도, 심지어 수사를 담당한 검찰과 재판을 이끈 많은 판사들도 그 최종 결과까지는 예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심판에 관여하고 관여된 모든 사람들은 절대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어떤 장엄한 계획의 실천자도 아니고, 다만 당장 주어진 피해선 안 될 자기 임무에 그 순간마다 충실할 수밖에 없는 살아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적 심리의 최종 결과가 박근혜와 이명박의 장기 징역형과 벌금과 추징금이다. 겸허하게, 진솔하게 말하면, 나는 이명박까지 결국 그 죄상이 드러나 박근혜를 따라 감옥 갈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결과는 과연 정치 보복이고 정치 재판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치 모든 것을 높은 곳에서 꿰뚫어 보는 위치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았는지, 아니면 인간의 망각과 기억 상실과 무지를 부추겨 일부러 속이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

나는 박근혜, 이명박의 범죄와 감옥행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힘이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작용력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기 힘들다. 좀 더 나아가면 역사의 어떤 작용력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냥 시간의 흐름 속에 내맡길 수밖에 없다. 이 흐름에는 제아무리 권력자라 할지라도 함부로 개입하면 해를 입는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힘은 박근혜 탄핵 결정문이 낭독될 때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 방송 매체로 지켜본 모든 사람들이 느꼈던 감회 또는 감정, 아니면 태극기를 흔들며 박근혜는 무죄라고 외치며 탄식한 이들의 감정을 훨씬 뛰어넘는 어떤 커다란 것이다.

아니, 그러면 신의 섭리인가? 아니면 책에 나오는 역사의 천사가 벌인 일일까? 그런 말은 그저 단편적인 연상 작용이고 통속론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이 우려먹는 민주공화국 ‘국민’들의 심판인가? 지금 시점에서는 맥빠지는 진부한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저 시간이 흘러야 해소될 수밖에 없는 그런 힘이다. 5년짜리 임기 대통령의 고유한 사면권도 지금 그 힘 앞에서는 초라한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사면을 논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 박근혜, 이명박 두 사람은 수감 생활 동안 차라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도 읽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2021.01.1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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