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적 합법성, 룰(rule) 지키는 걸 쉽게 보면 안 된다

서울행정법원 재판부(행정12부)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효력 정지 신청을 받아들인 <결정 요지문>을 읽어본 바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징계 사유들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거나 인정되지 않고, 징계위원회 의사정족수가 기피 과정에서 채워지지 못해 징계의결도 무효라는 점까지 인정된다는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본안 판결에서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는바, 검찰총장으로서 남은 임기와 정직 2개월이라는 징계 효력을 고려하면, 본안 재판 절차가 임기 내에 마무리된다고 보장할 수 없는 상태에서 뒤늦게 승소하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만회할 길이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효력은 중단되고 직무에 복귀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법무부, 청와대 모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어떤 자신감 때문인지 룰(rule), 절차적 정당성, 합법성 문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적잖기 때문이다. 다수의 지배가 곧 다수결로 의회에서 밀어붙이는 게 아님을 이다지도 모를까? 도대체 왜들 그런 것일까?

뭐가 그렇게도 급한 것이었을까? 일자리 안정과 소득 격차 문제, 보건과 산재 방지 관련 법안들도 그렇게 절박하게 추진했으면, 검찰 개혁은 더뎌지더라도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시하는 민주적 소통력과 지도력이 한계에 다다른 점을 더불어민주당이 뼈저리게 깨달을지 알 수는 없다. 재판 결과에 충격받아서 비난하고 공격하면 사람들이 짜증나 등을 돌려 더 수렁에 빠질 것이고, 지지율은 꾸준히 내려갈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초부터 이미 불안정성을 드러낸다고 느꼈지만, 버거운 순간마다 되살아나게 해주는 사건들이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지금 와서 보면 촛불 항쟁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급진적이고 혁명적 변화(민주당 능력만으로 그럴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보다는, 일관성 있고 질서 있는 개혁을 바랐을 법하다.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택했건 아니건 말이다. 그런데도 정말 비생산적인 검찰 힘 빼기에 몰입하다가 오히려 에너지가 낭비되고 자기 힘만 빠져버린 셈이다. 도대체 그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그렇게 이야기했건만.

법무부 추 여사는 물론이고, 여기에 플러스 청와대 연출 PD 탁 씨, 자격이 있다고 믿기엔 거부감을 많이 일으킨 국토부장관 후보자 변 아저씨, 청와대 노 실장 정도는 물러나는 결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은 기간 대선 일정 감안하면 문재인 정권 임기는 길어야 1년이다. 올해도 코로나와 싸우다 한 해가 훌쩍 가버렸다. 과욕은 금물이다. 코로나 위기 극복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여 민심을 조금이나마 얻고 청와대를 나가길 바란다.

[2020.12.2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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