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hur Rosenberg, Demokratie und Sozialismus – Zur politischen Geschichte der letzten 150 Jahre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 지난 150년의 정치사), 1962: Frankfurt am Main, Europäische Verlaganstalt.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을 어렵사리 읽어본 바에 따르면, 순수 형태의 민주주의란 애초부터 없으며, 각 나라의 특수한 사정에 따라 발전하는 운동이다. 저자 아르투르 로젠베르크는 19세기 말에 태어나 2차 대전 종전 직전에 사망한 독일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다. 로마사, 로마 공화정의 역사를 연구한 고대사가이면서, 1920~30년대에 독일의 독립사민당(USPD) 및 독일 공산당(KPD)의 지도부에 속했고, 한때는 공산당 내에서도 극좌파 노선을 추구했지만 결국 탈당하고 학문의 길로 매진해야 했다. 나치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면서 스위스로, 미국으로 망명해 생애 마지막은 미국 브룩클린 컬리지에서 가르치다가 병으로 죽었다.
1938년에 첫 출간된 이 책은 아마도 로젠베르크가 망명 생활 중에 써낸 서구 민주주의의 150년(프랑스 혁명부터 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파시즘 확산 때까지)에 걸친 정치사라고 할 수 있다. 1962년 서독 프랑크푸르트의 유럽 출판소는 재출간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러두기를 적어두었다.
이 책은 1935년부터 1937년 사이에 저자가 ‘자유민주주의의 붕괴(Zusammenbruch der liberalen Dmokratie)’라고 이름 붙인 흔적을 남긴 채 쓰였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폴란드, 헝가리와 포르투갈에서는 전체주의 정권이 허약한 민주주의 정부를 지탱했고, 스페인 공화국은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성직자-파시즘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장의 몇 가지 판단과 평가들이 표명되고 있는데, 이는 이후 사태 발전을 통해 반박되었다. 로젠베르크의 오류들은 동시대인들의 오류들 중 하나이다. 25년의 간격을 두고 1930년대를 다시 한 번 평가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진다면 확실히 몇 가지 판단은 달리 내려질 것이다. 출판사에게는 그러나 한 역사가의 저작에 대해 삭제나 수정을 가하는 것은 로젠베르크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므로 개작은 하지 않았다.
출판사가 말한 마지막 장의 제목은 ‘민주주의에 대한 총평(Allgemeine Kritik der Demokratie)’이다. 물론 이 책 출간 직후 2차 대전이 터지고 파시즘은 붕괴했고 서구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향후 건재했지만, 약 80년이 지난 지금 로젠베르크의 견해에서 전혀 시사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새로운 민주주의는 아직도 오지 않았고 또 왔더라도 계속 발전하는 것이니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현대는 1930년대에서 로젠베르크가 바라본 현대이다. 지금은 2020년이다.
마지막 장 내용 소개:
민주주의에 대한 총평
– 민주주의 그 자체라는 공식적 추상이 역사적 생명을 갖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항상 특정 목적을 위해 싸우는 특정 사회 세력과 계급의 정치운동이다. 즉 민주주의 국가는 민주주의 운동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 정치운동으로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시민적 민주주의로 나뉜다:
→ 사회주의적 민주주의(sozialistische Demokratie)는 중요한 생산수단을 일반인이 장악하는 대중의 자치를 추구한다. 19~20세기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그러했다.
→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는 아직 한 국가에서 지배권을 갖지 못한 상태이다.
– 시민적 민주주의도 인민 대중의 자치를 추구하지만 사유재산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네 가지 형태로 등장. 1) 사회적 민주주의(soziale Demokratie): 사유재산 원칙을 고수하지만 국가에서 봉건적 자본주의적 상층 계급과의 투쟁에서 노동 대중의 주도권 추구. 로베스 피에르 시기의 프랑스와 제퍼슨 시기의 미국이 대표적. 가장 최근에 사회적 민주주의의 고전적 형식은 1903~1914년 레닌이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적 독재라는 가르침으로 제시했다.
– 나머지 세 가지 시민 민주주의는 계급투쟁을 거부하고 자산가 상층과 노동 대중 간에 균형을 추구하며 이러한 합의는 제국주의적 형태나 자유주의적 형태를 띤다.
2) 제국주의적 민주주의: 거대 권력과 제국 정치로써 기업가와 노동자 간 균형을 가져올 수단을 만들려 한다. 디즈랠리 이후 대영제국이 대표적.
3) 자유민주주의: 권력과 폭력 정치 해체, 평화와 자유경쟁으로 인간의 문화적 진보를 보장함으로써 계급 타협 수단을 찾는다. 작은 나라들인 스위스와 노르웨이에서 가장 발전.
4) 식민지 민주주의: 시민적 민주주의의 독특한 형태. 대서양 건너편의 백인 이주민들이 광활하고 황폐한 곳에 거주지를 발견한 곳. 독립 주들이 계급 타협을 가능하게 한다. 약 1890년까지의 미국과 세계대전까지의 캐나다가 해당.
– 민주주의 운동의 개별 유형의 차이는 현대에는 매우 뚜렷하다.
→ 더 새로운 민주주의 역사: 레닌의 볼셰비키주의자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진보적 공화주의자들, 챔벌린의 합의임금 개혁가들과 들어맞는다.
→ 스위스 산악 주들, 노르웨이의 해안 어촌, 랭커셔 산업지구에서 민주주의 운동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 하나의 똑같은 일반 형식으로서 민주주의 공식은 유용성이 매우 적고, 민주주의 특정 유형의 정확한 개별 검토만이 역사적 정치적 이해를 향상시킨다.
–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는 결론적으로 근대 시민민주주의의 한 형태가 지배하는 공동체.
→ 한 국가의 사회적 내용을 판단할 때 쓰여진 전통적 헌법을 검토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제도 장치들이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고 개별 계급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하며, 누가 주어진 순간에 실제로 권력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 이런 검토의 고전적 형식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 한 국가가 과두정인지 민주정인지, 군주정인지 공화정인지를 단순히 설명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매 경우에 최대한 정확하게 현실적 사회 조건을 검토하고 누가 실제로 권력을 가졌는지 검토해야 한다.
– 중세의 봉건국가도 사회주의국가도 하나의 명확한 유형 또는 형태이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시민적 국가의 나머지 현상 형태들과 시민적 사유재산이라는 결정적이고 중요한 기본 사실을 공유한다.
→ 경제적 기본 사실에서 모든 것이 들어맞는 나라들 내부에서 민주주의가 멈추고 과두정치가 시작되는 경계성은 매번 정확히 찾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 근대 사회 발전은 매우 복잡한 과도기적 조건과 타협의 산물을 낳았고 그것의 뚜렷한 판단은 당연히 인식되는 게 아니다. 사회 세력은 끊임없이 바뀌며 헌법 조문이 똑같더라도 그러하다.
→ 미국 헌법은 몇 가지 수정된 오늘날까지도 워싱턴 시기와 똑같지만 미국 사회와 실질적인 미국 헌정상의 끝없는 변화가 이어졌다.
– 로베스피에르의 기요틴 처형과 금융자본에 맞선 제퍼슨의 경제적 투쟁 조치는 그 성격이 매우 뚜렷(사회적 민주주의).
→ 다른 세 유형의 시민 민주주의, 즉 자본과 노동 간, 가난한 자와 부자 간 타협에 모든 것이 근거하거나 근거지으려 하는 경우는 검토하기가 훨씬 어렵다.
→ 시민적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은 경제적으로 결정적 지위를 갖는다. 자본가들은 그러나 노동자와 정치적으로 타협하고, 이 타협은 양자의 자유로운 의사와 경제적 긴급성에 대한 판단을 통해 유지된다.
→ 그러나 대중을 타협으로 강요할 결정적인 물리적 강제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상층 계급이 군대와 경찰의 압도적 물리력을 동원해 그러한 합의를 강요하는 한 합의란 존재하지 않고, 상층 계급의 위력이 매우 폭력적이면 노동 대중은 더 이상 동등한 몫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
– 현대에 미국, 대영제국, 스위스와 노르웨이 같은 나라들이 일정한 사안에 합의하는 시민 민주주의의 안정된 형태를 발전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나라는 1914년 이전에는 평화 속에서 온건하고 꾸준한 국방력만 유지하며 높은 수준의 탈중앙적 자치를 유지했다.
→ 세계대전 이전 시기의 미국과 프랑스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공화국은 민주적 요소와 비민주적 요소가 섞여 있다.
– 미국 도시에서 부패한 사업가 정치인들은 거주민 대중이 공적인 과정에서 대항력이 잦아들 때만 권력을 얻었다. 부패와 경제 실패가 심각해지면 곧 노동자와 상인 등의 대다수가 다시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개혁운동이 생겨나 다음 선거에서 부패한 정치인은 물러나고 도시나 주에서 부패 일소를 위한 강력한 청소 시기가 시작하여 시민사회 에너지가 다시 잦아들고 사업가 정치인이 다시 진출할 때가지 오랫동안 유지.
→ 아메리카에서 어느 누구도 국민 대다수가 진지한 의사로 단결하여 그 적들을 공격하면 반대할 수 없다.
→ 소규모 미국 연방군은 그때 역할을 하지 못한다.
– 프랑스에서는 1914년까지 군대가 모든 정치권력 투쟁에서 항상 거대 변수였다: 제3공화국의 모든 위기는 시작부터 세계대전까지 군대와 관련되었다.
→ 마크 마홍 위기, 불랑저 위기, 드레퓌스 사건과 2년 복무 기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 군사·정치 강국인 이웃 독일을 감안하면 강군의 유지가 긴급했다.
→ 미국: 대륙에서 심각한 군사적 적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행운스런 상태였다.
– 미국이 통치하는 느슨한 연방주의와 프랑스적 국가체제의 역사적으로 계승된 엄격한 중앙중심주의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 1914년 이전에 미국식 자본주의는 프랑스보다 훨씬 강하게 집중화되고 강력했다. 프랑스의 거대 자본주의는 엄격한 의미의 경제권 외부에서는 미국 거대 자본에는 없는 동맹이 존재했다.
→ 미국식 공공생활의 많은 부정적인 개별 양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시민 민주주의는 항상 프랑스보다 훨씬 견고하고 안전했다.
→ ‘지방적’ 색채를 갖는 국가 유형과 민주주의는 일정한 선거 친화성을 보여준다. 전쟁이나 내전 시기에는 민주주의 운동이 1793년 식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폭력을 통해 스스로를 관철시킬 필요가 있으나, 느슨하고 긴 시기에는 여태껏 역사적 경험에 따르면 민주주의적 공동체는 자치 행정의 지방적 요소가 압도할 때만 유지가 가능하다.
→ 지방자치의 민주적 원리가 근대 거대 국가의 요구 및 근대 경제의 단일 조직과 대부분 일치하려면 상당한 실질적 어려움이 생긴다.
→ 대영제국과 미국의 발전은 이러한 어려움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질문: 민주주의와 이른바 합법성의 관계. ‘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평화적인 발전을 우선시하는 국가 형태인가?’, ‘투표에 의한 합의라는 민주적 수단은 인정되고 정치적 폭력의 수단은 거부되는가?’
→ 민주주의적 국가와 민주주의적 운동은 구분되어야 한다.
– 모든 국가는 헌법이 바로 그렇듯이 합법성이라는 외양을 갖고 나타난다. 그 법률은 모든 거주민에게 존중받도록 요구하고 법을 폭력으로 바꾸려는 모든 이를 반역자로서 박해한다.
→ 절대군주정이나 자본주의적 과두정이나,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기 동안 질서 있는 합법성을 고수할 수 있었다.
: 프로이센 절대왕정은 1세기 반 동안 1848년 혁명까지 합법성의 정신으로 완전히 방해받지 않고 평화적인 대내 발전을 달성했다. 긴급한 개혁은 절대왕권에 의해 새로운 법률 형태로 수행.
: 영국도 1688~1867년까지 자본주의적 소수파의 지배하에 완전히 합법적인 발전을 거듭.
→ 민주주의 국가는 합법성 영역에서 다른 국가 형태들보다 결코 두드러진 우월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똑같은 평가가 폭력이 아닌 투표와 다수의 의지로 논쟁적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도 적용. 대표성을 띠고 통치하는 조직체를 갖는 모든 다른 체제도, 민주주의도 마찬가지. 영국은 시민적 민주주의가 존재하기 전에도 1세기 동안 상하원의 평화적인 다수 합의로 통치했다. 400년 동안 평온한 발전을 이룬 스웨덴도 봉건 영주회의의 합의가 나중에 현대적 의회로 바뀐 것.
→ 그러나 현존 국가의 적들은 기존 국가의 합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늘 부인당한다. 국가가 폭력적으로 공격당하면, 그 국가는 폭력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것.
→ 민주주의 국가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특별 지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다른 정치 경향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운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에 의존한다.
→ 1789~1871년의 프랑스 민주주의: 그야말로 피로 쓰인 역사.
→ 미국 민주주의는 거대 내전을 수행하여 국가 형태를 관철시켰다.
→ 스위스 민주주의는 1847년 이전에 연방과 칸톤 주에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관철.
→ 노르웨이 민주주의는 1905년 혁명 덕분: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합헌성을 완전히 깨뜨린 것.
→ 대영제국: 1912~1914년 울스터 프로테스탄트들이 참을 수 없는 의회 다수 합의에 따르지 않고, 아일랜드 독립에 대해 제국 법률을 거부했다. 울스터의 노동자, 농민, 상인은 영국 민주주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며 카슨(Carson)의 지도로 단결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무장 폭력 수단을 생각했고 영국 인민의 절반이 그들에게 동조.
– 역사의 교훈: 민주주의는 해당 국가의 특정 시기에 따라, 다른 모든 정치운동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이거나 비폭력적인 수단을 썼다.
→ 민주주의가 비폭력의 구현이라는 오해는 현대에는 오로지 민주주의를 특정한 유형의 민주주의, 즉 최근 100년간 자유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데서 생겨났다.
– 우리 시대에 ‘민주주의’ 그 자체의 참화를 거론한다는 것은 역사를 관찰하는 이에게는 불가능하다. 이미 ‘민주주의 그 자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로지 특정한, 애초부터 허약한 민주주의의 기본 형태, 즉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만이 붕괴되었다.
→ 일반적인 가치를 갖는 자유주의적 사상이라는 것은 상정되지 않는 것이다. 특정 정치정당에 의해 시작된 그 사상은 자유롭게 발전하기 위한 개별 인간의 권리를 표현하는 한에서만, 인간 문화의 가치 있는 자산에 속한다.
→ 오히려 문제는 평화, 자유경쟁, 자유무역과 의회주의적 합법성으로 시대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자 희망하는 아주 특별한 형식의 시민 민주주의: 이런 특별한 형태의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붕괴했다.
– 지난 150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 경향의 후퇴를 딛고 대중의 자치에서 다른 형태들이 꾸준히 생기를 얻었다. 이것이 미래에 달라질 것이라는 가정에는 어떤 근거도 없다.
– 일하는 대중, 즉 인류의 대다수는 모든 나라에서 자기 스스로 자치를 수행하는 것이 존엄한 존재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 전제임을 깨닫게 될 것.
→ 오늘날 필요한 것은 도시와 지방에서 노동 대중의 상태, 예를 들어 스위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들의 상태, 이탈리아와 폴란드에서의 상태를 비교하여 민주주의의 현실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
– 역사적 검토의 최종 교훈:
1914년 이전의 민주주의적 공동체가 현재의 위기에서 유일한 그 무엇이 사라진 것이 전혀 아니다. 민주주의적 자치 행정은 공화국이나 보통투표권의 선포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민의 삶으로부터 역사적으로 성장하는 것인 만큼, 따라서 민주적 자치는 위대한 저항력이다. 새로운 시대에 실제로 민주주의라 할 어떤 것은 지금까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2020.06.08,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