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사태 한국의 한 달에 대한 의견

1.

확진자가 어느 동네에 살고 어디 가서 밥을 먹었다, 어떤 곳에 얼마나 머물렀고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식의 정보들을 정부와 보건당국, 지자체는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처럼 공공보건을 위한 긴급 상황에서는 당사자 동의하에 위치 정보 수집하고 CCTV 확인하는 것, 사회 인프라를 이용해서 감염을 막기 위해 파악은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걸 언론에, 이런저런 미디어에 공개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확진자가 어느 동네에 살든 어디를 갔든, 감염 우려가 생겼다면 1차로 긴급 소독과 방역 조치를 철저히 하고, 그래도 모자랄 때 특별히 집단 감염 우려가 크다면 폐쇄 조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동선을 자세하게 다 공개하거나 시민들이 오히려 불안하다고 항의하고 요구한다면,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생계와 경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여 사회 전체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크게 발생할 것이다.

이는 불안을 키우고, 그것은 또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높이고, 그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또한 면역력 저하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한 사회나 국가에서 경제는 단지 돈을 버는 행위만이 아니라 생활이 돌아간다는 것이고 구성원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동선 공개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 문제 제기를 한다는 거지.

감정이란 것이 심리적-신체적 증상과 관계가 깊다는 연구 결과들은 정신의학, 심리치료, 인지과학에서도 다 인정되는 결과일 것이다. 지금 개개인들은 위생에 계속 신경 쓰고 언행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고, 오히려 이웃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돌봐야 한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 및 보건당국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계속 대처하길 바란다. 안타깝게도 신천지 관련 감염자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폭증했고, 청도대남병원의 열악한 정신병동에 격리 조치된 환자들도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곳에 역량을 집중하여 환자들의 불안과 공포를 완화하면서, 증상을 계속 관찰하여 치료하도록 지원하되, 타지역들 또한 적시에 자기 지역에서 진단된 환자 역시 효과적으로 치료하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투 트랙을 정부가 잘 조직하고 관리하길 바란다. 조치를 할 때 환자와 지역민들의 인권과 존중을 경시하면 치료에 대한 신뢰가 흔들려 효과도 내기 힘들 것이다. 환자가 의사나 간호사를 못 믿으면 치료가 잘 안 된다.

2.

중국인 입국 금지를 아직도 주문처럼 외는 것은 그만했으면 한다. 2020년 2월 26일 현재 1200명이 넘어간 확진자 중 중국 국적자가 몇 명이나 되나? 다섯 손가락,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으로 보도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는 초기에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했지만 이미 환자가 급증했고, 유럽연합의 경우도 국경 봉쇄로는 전염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는데, 왜들 그렇게 지금 와서 책임을 중국에게 돌리려고 야단이냐. 중국 우한, 후베이성과 각지에서 세상을 떠난 환자들, 한국, 일본, 이란, 싱가포르, 이탈리아 등등 먼저 간 환자들의 희생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분명 빚지고 있는 것이 맞다.

3.

신천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감염원의 주요 진원지가 된 것은 확실해졌으므로 신속하고 전격적인 조치가 필요하지만, 일단 환자로 파악되면 신천지 교도라는 색안경으로 접근하지 말고 치료받아야 할 의료 전달 체계의 대상으로 동등하게 접근해야 한다. 교단이 설파한다는 내용이 무엇이고, 교세 확장을 어떤 방식으로 해왔고, 집회는 어떤 식으로 했고, 교단 조직을 이끄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데 집중하면서 감염 책임을 투사하다가 다른 데서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가라 앉은 다음 비판했으면 한다.

4.

종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식의 본질적 물음보다 ‘인류사에서 종교가 무엇이었나?’ 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보자면, 그야말로 프로테스탄트든, 천주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사랑과 희생과 자비의 실천자이자 증거자, 양심의 최후의 보루가 아니겠는가?

종교 역시도 인간이 만든 문화요 제도이다. 다만 종교의 전통과 권위는 교세나 규모가 아닌 윤리적 진정성과 사랑의 실천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한다. 이번 기회에 한국 사회의 종교 집단들 역시도 그동안 외면당하는 이웃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헌신해왔는지, 혹시 종교의 존재 양식 안에 상업적 자본의 논리가 바치 바이러스처럼 실체도 알 수 없게끔 퍼진 것은 아닌지, 고도의 각성과 윤리적 통찰력이 이미 무뎌진 것은 아닌지 철두철미한 양심성찰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메르스 확산 이후 안전에 대해 심리적으로는 예민해졌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안전 시스템이나 보건의료 체계의 공공성은 제대로 복구되지도 쇄신되지도 않았다. 정치가 여기에 힘을 집중하지 않으면 서로 돕고 협력하고 나누는 공동체 정신도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 공공의료와 안전 시스템을 제대로 확립하지 않고서 언제까지 ‘착한 시민’들에게 헌신과 협동의 윤리만 강조할 수는 없다. 그런 것도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다.

이번 4.15 총선에서 아직까지도 준비가 안 된 정당이나 정치인들 중에 선거를 연기하자는 발상도 나온다는데, 역사적으로 선거 연기를 주장하는 세력은 거의 패배했고, 오히려 선거를 제때 치르거나 조기에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한 세력은 승리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1848년 혁명 직후에 사회적 민주주의자들이 공허한 구호만 외치고 대중을 설득하고 끌어가지 못한 채 선거 연기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군주주의 복고파와 자유주의 우파에게 크게 패배하고 마침내 루이 보나파르트가 권력을 장악했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다. 선거 연기 주장은 곧 자신들이 무능 정치 세력임을 대중에 앞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현재의 위기에 두려움 없이 적극 대처하도록 하세!

[2020.02.2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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