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4+1 법안 통과 후

박근혜 탄핵, 국정농단 재판 이후 촛불 민심의 본류는 ‘정치-경제-사법 카르텔 권력과 그에 기생하는 세력들의 비리와 부패 청산’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그 권력 주변의 별로 새롭지도 않은 ‘안티 자유한국당, 안티 조-중-동 열성파들과 일부 언론들’은 공수처의 요체를 오로지 ‘검찰 권력 축소’로 설정하고 법안의 설립 타당성을 대중들에게 진정성 있게 해명해 내지 못했다. 20년 된 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분열된 정치적 상황에서 ‘튼튼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조국 사태 이후 검찰에 대한 반발, 나아가 적대감까지 부추겨진 가운데 민주당과 4개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국 문제적 조항까지 넣어 통과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수처를 통해 추구하는 바의 일면을 스스로 드러냈고, 청와대의 요구에 순응하는 민주당의 현주소와 바닥도 드러났다. 국정농단 이후 자유한국당 중심의 보수 세력의 바닥만 드러난 게 아니다.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두 인물의 구속과 재판 이후 땅에 떨어진 정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고, 동시에 대외 환경의 복잡한 상황을 뚫고 나갈 방향과 비전을 설득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향은 모호하고 개혁은 지체되고 심지어 후퇴했다. 자산과 정보가 충분한 계층이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속을 삭히며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충돌을 거듭하며 논란을 소지를 안고 출발한 공수처에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병아리 공수처가 공룡 검찰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고 하는데, 이 나라 정치 현실을 너무 단순 논리로 단정하는 것 아닐까? 대통령과 청와대는 유능함의 유무, 정치적 신뢰의 있고 없음과 관계 없이 여전히 무소불위인 것이 이 나라 정치 현실임을 되새기길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동물국회’ ‘식물국회’, 이런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볼썽사나운 모습’ 이런 표현으로 국회를 비난한 바로 그날, 그 국회가 본인의 숙원을 해소해준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잘못의 원인을 외부로 투사하기에 앞서 대통령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 안 그래도 국정농단-탄핵 이후 땅에 떨어진 이 나라 대통령의 권위를 다시 세우려면 정치적 소명 앞에 충실한 덕행으로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 얼어붙은 인심을 녹일 수 있어야 한다.

앞날을 개척하는 이들이라면 왜곡된 논의 속에 통과된 공수처 하나, 현 정부의 여러 실책과 오류들에 대한 분노에 휘둘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브레히트가 써놓았다는 말이 왜 떠오르는 것이냐: “놀랍게도 ‘창조적 형상’의 완전한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별로 잃는 것은 없다. 어딘가에서는, 무엇으로든, 결국은 시작해야 한다.”

[2019.12.31, 00:08]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