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하루 최소 8시간 일하는 아저씨, 아줌마, 청년들이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기자 간담회 볼 시간이 어디 있냐. 그저 주요 뉴스 보고, 상황 돌아가는 것 보고 그동안 벌어진 일들 보고 나름대로 판단하지.
그런데 어쨌든 나도 밤늦게 잠깐 보다가 어느 기자가 ‘법치주의’에 대한 견해를 알기 쉽게 밝혀 달라고 묻는 질문에 조국 후보가 답변하는 걸 들었지.
알아듣기로는 “기존의 법이 존재하는 대로 충실히 지키는 것이 법치주의겠지만, 좀 더 나아가 법 자체의 정당성을 살피면서 법을 실천하는 것”이라나 뭐라나. 수긍하기 힘든 막연한 답변이었다. 그 정당성은 누가 판단하나? 권력을 가진 자가? 좀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이다.
뭐니뭐니 해도 법치주의는 바로, ‘권력이 법률의 근거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 아냐? ‘국가는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 아냐? 그리고 그 법이란 것은 적어도 대의민주제 국가에서는 의회의 민주적 정당성을 토대로 입법되어야 하는 것이고, 의회민주주의는 바로 대다수 시민(市民), 인민(人民)의 의사에 따라 통제를 받는 것이지.
의석수로는 도저히 통과가 힘들 것 같았던 박근혜 탄핵안 통과가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거지. 바로 대통령 권력을 쥐고서 법 위에 서서 끝까지 무책임하게 처신했기 때문이고, 결국 탄핵심판에서조차도 헌법 수호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던 거 아냐. 바로 엊그제 대법원 판결이 법치주의가 무엇인지 생생하게 가리켜줬잖아.
또 어느 기자가 여론의 과반수 넘게 반대해도 법무부 장관이 되려고 하느냐 물으니, 공직 수행과 임명은 여론에 따라야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하더라고. 그래, 맞는 말일 수는 있지. 그러면 인사청문회가 늦더라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해명하지 뭐하러 기자간담회는 그렇게 덜컥 진행하느냐 말이지. 청문회가 진행될 마지막 순간까지 못 기다리는 사람이 지금처럼 예민한 정국에서 권력기관 개혁의 적임자로서 과연 어필이 된 건지 모르겠어. 강남 좌파, 흙수저, 금수저 그런 표현은 뭘 그대로 인용하는 것인지 원. 솔직히 진정성과 겸허함이 그다지 안 느껴지더라고.
청문회가 늦어지고 무산 위기에 놓인 것은 자유한국당의 정략적 의도 때문이라고 책임은 돌릴 수 있지만, 벼랑 끝에 선 막무가내 자유한국당 한두 번 겪었나? 어제오늘 일이야? 그나마 가족 증인 철회하겠다면 일단 멈췄어야지, 그렇게 전광석화로 기자 간담회인지 뭔지 열면 어떻게 하냐는 거지.
어떻게든 밝혀지겠지만 본인의 법무부 장관 수행의 정당성이 기존의 부정적 여론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봐. 12일 이전 그러니까 9일이나 10일 이전에 청문회에 출석할 의사가 없다면, 청문회 없이 그저 여론 동향을 보고 판단할 거라면, 사퇴하는 게 낫다고 봐. 현 정부는 야당들의 강력한 반대를 뚫고 가기엔 조국 후보를 감쌀 수 없는 상황이라고 봐.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일부 언론들은 속마음으로 임명을 차라리 강행하길 바랄지도 몰라. 대립 수위를 높이고 싶으니까. 제2의 패스트트랙은 안 돼. 생각 잘 해라, 후회하지 말고.
존 로크의 <시민정부론>에서 읽은 한 구절을 되새겨 보자고:
하나의 설립된 국가가, 그 자체의 기초 위에서 서서, 그 자체의 고유한 성질에 따라서 행동할 때, 즉 공동사회의 보전을 위하여 행동할 때, 그곳에서는 단 하나의 최고권력밖에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이 입법권이다. 그 이외의 일체의 권력은 모두 이것에 종속되며 또한 종속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입법권도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행동해야 할 하나의 신탁된 권력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만일 입법부가 그 위임받은 신탁(信託)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되었을 경우에는 그 입법부를 배제하거나 변경시킬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은 여전히 국민의 수중에 남겨져 있다.
– 제13장 국가의 여러 권력의 종속관계에 관하여 中
[2019.09.03,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