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하고 포옹하던 장면, 참으로 선명한 기억이다. 분단 이래 최초의 남북정상의 상봉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사람의 활짝 웃는 반가운 얼굴은 정말 진심 어린 감격이 반영되어 있었다. 이희호 여사가 남기고 간 유언,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염원이 꼭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게 남은 이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올해는 꼭 지난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의 우여곡절 과정이 실질적 성과물로 나왔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최근 언론을 통해 발견한 전문가 견해로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자 전 국정원장의 견해(비핵화 협상 “미국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 그리고 이삼성 교수의 견해(“한국, 평화협정의 불가피성 미국에 설득해야”)에 공감이 간다. 북한에게 선비핵화 약속을 받아내려 계속 압박하는 방법은 정말 답이 없는 전략이라고 본다. 과연 어느 나라가 안보를 지키기 위한 강력한 국방력 수단을 먼저 내려놓고 협상에 임하겠냐 말이다.
한 나라의 체제를 당사자 아닌 다른 나라들이 보장해준다는 표현도 북한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봐라. 그것도 기분 나쁘지 않겠나? 그것도 상대는 ‘북한’이다. 수십 년 경제적 고립 속에서 자기 나라 안보를 스스로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나라에게 협상에서 ‘체제 보장을 해준다’는 표현은 좀 훈계나 고자세로 들리지 않겠나?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후 자력갱생 사회주의 경제건설로 총력을 집중하는 마당에 제재 문제에 매달리는 상황도 만들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반도 비핵화의 관점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관점을 일치시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즉,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 본토와 괌 기지에 대한 핵 위협 또는 미사일 위협을 제거한다면, 미국은 한미연합훈련의 실질적이고 공식적인 종료 및 역시 북한에 대한 잠재적 군사공격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실한 조치를 문서로 합의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전쟁이 나면 승패도 없고, 1950년처럼 피난도 없고, 그냥 재앙밖에 남는 것이 없는 게 오늘날 한반도다.
결국 북미간 ‘평화체제안’을 중국과 한국이 교차 승인하고 향후 다자안보체제에 러시아와 일본이 동참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본다.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올해 안에 열게 되면 이러한 ‘평화협상’의 단계로 직접 나아가길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이희호 여사의 ‘기도하는 심정’을 되새긴다.
미국은 왜 지금 구태여 ‘경제제재는 계속 유지된다’는 입장을 고수할까? 아마도 동북아에서 북한경제에 대한 투자 및 향후 평화체제 구축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전략이라고 본다. 남북간 경제교류는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그저 막힐 수밖에 없는 것일까? 현재로는 남한의 북한에 대한 농업기술과 쌀 등 작물 교류, 그리고 문화예술과 학술 교류, 관광사업 정도로 정리된다고 본다.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정부 승인과 지원으로 민간 및 농민단체, 대학과 학술단체가 참여하면서 교류 협력을 이어가면, 북미관계가 발전하고 정상화되면서 본격적인 경제협력과 투자, 철도와 인프라 사업도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이런저런 발언을 많이 했다. 난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가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 여러 면에서 잘 해주길 바라긴 하는데, 진정 안타까운 점이 많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시간을 미리 끌어당겨서 기대 수준을 높이려는 조급함이 분명히 있고, 북한을 바라보는 인식에서 우월한 훈계자의 입장 같은 것이 여전히 있다. 좀 더 대담한 포용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당위, 신념, 원칙만을 너무 자주 강조하고 반복하는 점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평화를 지향하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국민들을 믿고, 야당들도 마냥 북한에 적대적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본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우익들도 대북 철학이 바뀔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2019.06.15,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