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주식회사냐, 민주공화국이냐?

현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정책 방향이 도대체 뭐냐? 지난 두 달 사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20% 이상 빠졌다. 죽으나 깨나 내용도 없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만 외치는 문팬들은 그래도 과반수 넘는 지지율이 어디냐고 자위하는 모양이다. 참 무식하고 대책 없네. 지지율을 1년 넘게 70~80% 모아줘도 조금 까다롭고 어려움 닥치면 빈약한 대처 능력을 보이는 문재인 정부를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 검은 비닐 봉투 쓰레기 수거, 라돈 침대, 즉흥적인 플라스틱 컵 사용 자제 홍보, BMW 화재 원인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참 무슨 정부가 이 모양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국민들, 시민들이 어떤 정권을 지지한다고 할 때, 당장 체감되는 성과를 꼭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정책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 당장은 효과가 안 나도 믿을 만한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이 흔들리면 지지율은 점진적 하향 곡선을 그린다. 오바마가 8년 집권하고 퇴임 시 과반수 지지율 얻었지? 그런데 지금 미국이란 나라가 어떠냐? 트럼프가 당선되고 미국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지? 부디 지지율 정치하지 말고 정치를 잘 해서 지지율이 따라 오게 해라. 오바마의 정치도 훗날 분석해보면 포퓰리즘적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상위소득자 20%와 하위소득자 20% 간 소득 격차가 역대 최대치라는 결과에 당황한 정부가 표본조사 문제를 빌미로 통계청장을 자르고, 태풍 진로 벗어났다는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기상청장도 자르데. 현 정부의 정책 철학과 노선이 빈약한 건지,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 빈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있으면 근본적으로 진단하고 개선하는 게 우선이지 사람부터 자르냐? 기업 사장이냐? 솔직히 어이없다.

요즘 뉴스 읽고 보고 듣다 보면 속으로 혀를 차고, 욕도 많이 하고 살고 있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라고 요약하던데, 그럼 그 세 가지 기조가 수렴되는 진짜 정책 철학은 무엇인가? 요리조리 대변인 시켜서 참모들 시켜서 둘러치지 말고, 책임 있는 사람이 한번 대답해주길 기대한다.

최저임금법 개악하고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시 노동자 과반수(과반수 이상 조합원이 있는 노동조합)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개정도 밀어붙이던 정부가 과연 소득주도성장을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지, 오늘 장하성 정책실장 설명을 아무리 봐도 수긍할 만한 실질 내용은 없다. 이미 발표한 조치들 재요약한 수준인데 실효성은 불분명해 보인다.

인터넷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 비율은 무지막지 하게 높이려고 난리도 아니던데, 그게 어떤 국가 정책적 함의가 있는 것인지 설명도 없다. 카카오와 네이버를 위한 특혜법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거기다가 원격의료 초기 단계도 실시하겠노라고 움직이기 시작하더구만. 주민번호 대방출 국가에서, 빅데이터 모아서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개인정보보호법도 완화하겠다고 아주 금융위원장이 연초부터 난리더구만. 그게 뭘 위한 정책이냐?

이 정부는 참 이상한 게 시민사회가 크게 반발할 만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촛불정부’라는 미명하에 충분한 토론이란 걸 하지 않아. 탈원전, 개헌, 대입개편안 등 사회를 크게 바꾸는 문제를 두고 시민들이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언론과 소통하며 토론을 추진하는 과정도 없고, 무슨 숙의민주주의니 듣도 보도 못한 용어 남발해가며 지들끼리 선발한 사람들로 합숙 토론하고 그러더구만. 지금은 “그냥 웃지요”이지만, 웃음이 가시면 험난한 대치 전선이 몰려올 수도 있다.

정권이 오만방자해지는 길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시민사회와 국민들을 쉽게 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한국 현대정치사에 무지한 정치 세력들이 그렇게 했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랬다. 시민들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고, 그중 한 명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켜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정부, 이른바 ‘문재인’ 정부(이런 특정 정치인 이름을 내건 정부 명칭을 아주 싫어하는 바이다)를 1년이 넘게 평균 70% 이상 지지율로 밀어줬다.

경제정책만 두고 딱 하나만 요구한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빈약한 용어를 자꾸 나열하지 말고, 고용의 질을 높이고 고용 안정 확보하기 위한 제대로 된 혁신을 해라. 개헌안에 정보인권 조항 설치했다고 내세우더니 자유한국당 반발로 의회 투표에도 못 붙였지. 국회에 개인정보보호법안 완화해달라고 구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지. 보수야당들 설득해서 대기업 사용자들과 다국적 기업이 향후 위기 발생 시 구조조정 명분으로 노동자들 함부로 자르지 못하도록, 그걸 핑계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도 흉내 내지 못하도록, 해고 사유 제한 항목을 더 강화하도록 노동관계법을 개정하기 바란다.

만약 인터넷은행 산업자본 비율 증대, 원격의료 규제 완화, 개인정보보호법 완화 등 규제완화 법안들 시민사회와 이해 당사자들 간 충분한 토론도 없이 밀어붙인다면, 내 생각엔 문재인 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전선 앞에 놓일 것이다. 내용도 없고 가벼워져만 가면서 독자들 훈계하기 좋아하는 몇몇 언론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진보 진영의 과도한 반발’을 거론해가며 그게 마치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이었던 양 갖다붙이기는 잘도 하던데, 미안하지만 항상 자본과 권력은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고 역사적으로 결정적 시기마다 이 역동성이 작동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아직은 주식회사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래. 그리고 비판하는 시민들과 국민들 탓하는 정치 세력은 반드시 망하게 돼 있어.

[2018.08.2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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