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늦가을도 아니고 초겨울도 아닌 스산한 계절.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강렬한 물대포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백남기 씨를 생각한다. 칠순을 앞둔 농민이, 이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일상을 누렸어야 할, 한 집안의 가장이 쌀값 보장하라고 참여한 집회에서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생사를 오가는 운명과 싸우고 있다. 무장한 경찰이 정교한 기계 장치로 시민들을 위협하면 그게 무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시민들은 피부가 찢기고 화끈거리고, 캡사이신 세례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신음한다.
일하다 그냥 어깨 한쪽 근육에 문제가 생겨도 맘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가라앉는데, 생존권 지키기 위해 민중대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공권력이 가한 폭력은 참으로 비정하고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이다.
대학 시절 페퍼포그의 최루가스, 사과탄의 매캐한 연기 속에서 헤매다가 밤늦게 집에 와서 잠이 안 와서 깼다. 머리가 너무 가려워 거울을 보니 두피에서 진물이 나고 고름이 생겨 손으로 만져졌다. 나중에는 딱지가 앉고 얼굴에 여드름 비슷한 붉은 반점도 생겼다. 어느 친구는 최루가스 알레르기로 얼굴이 벌겋게 된 채로 몇 달을 지내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똑같은 시간대를 살아가지만, 누구는 시위에 참가하여 저항한 이유로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야 하고, 누구는 그런 소식을 뉴스로 접하며 착잡한 마음 한켠을 누른 채 또 살아갈 걱정과 싸우며 연명해 나간다.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까지 살수 기계로 시민을 공격한 이른바 공권력은 오히려 추적 검거하겠다고, 손해배상 받아내겠단다. 국가 공동체에서 한 시민의 생명보다 물리적 시위 진압이 더 소중하단 말인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폭력적 경찰력 행사를 정당화하고 폭도니 뭐니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면 과연 혼이 정상인가?
살수차 폭력을 막아야 한다. 최루액 섞지 못하고 함부로 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87년 대학생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고 민주항쟁이 정점을 이루었지만, 그 후에도 많은 이들이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죽고 다쳐야 했다. 소통을 막고 거대한 철문을 꽁꽁 걸어잠그는 정부 때문에 시민들이 희생되는 비극이 없어야 한다.
부디 백남기 씨가 회복되고 그날 다치고 충격을 받은 많은 분들이 쾌유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015.11.17,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