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사회», 한홍구·최철웅·엄기호·홍성수·한상희, 철수와영희, 2012
1. 신간도서, 어떨 때는 사야 했다

출판 과잉 시대이다. 먹고살기 바쁜, 아니 책 읽는 시간도 없는 힘든 사람도 많다. 한국 사람 독서량이 한 달에 1권이 채 안 된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다. 그런 조사가 뭐 큰 의미가 있겠나. 양보단 질이지 뭐. 다독, 다작, 다상량을 하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돈 들여 살 만한 신간을 결정할 때, 특히나 경제 사정이 빠듯할 때 구태여 실천에 옮기는 유인이 있다. 자기 관심사나 독특한 사연의 맥락을 살펴보게 해줄 것 같은 내용을 담은 책들이 그렇다. «감시사회»가 그런 경우와 들어맞았다.
지난 2~3년간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CCTV 니들 참 거슬린다. 행동 반경을 스토킹하는 이 장치를 놓고 그래 ‘찍어라 찍어’ 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도대체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에게 뭘 그렇게 알고 싶은 걸까. 냉소 어린 웃음을 짓는다. 또한 행정기관과 수사기관의 네티즌 압박으로 인한 일상적 자기 검열, 정보 수집 기술을 활용한 내 욕구 훔쳐보기에 이어지는 광고 내보내기 역시 참으로 불편하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주관한 강연회의 녹취 자료를 재편집한 책이다. 녹취물이라서 혹시 체계적으로 서술된 원고보다 조금 산만하고 중량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감시사회의 실태와 역사적 인권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담론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적절히 편집된 책이다.
2. 읽고서 얻은 점
인권 그리고 프라이버시(privacy)라는 개념은 어찌 보면 참 추상적이다. 그래서 이런 용어가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유포되면 유행어처럼 되어버리고, 그러면 피상적으로 허공에 떠다니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구체적 현실과 대응하는 그 개념의 다양한 내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나서 인권과 프라이버시를 생각하면 그 개념을 다룰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하나의 철학이 생긴다. 뭐 꼭 학자나 이론가만 철학하는 건 아니잖나.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우리가 직접 겪고 있는 생생한 현실을 자료로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박정희 정권이 중앙정보부를 통해 어떻게 정치인과 시민을 사찰했고, 그것이 반대자를 어떻게 탄압하는 데 활용되었는지, 그 결과 어떻게 박 정권이 몰락했는지, 그리고 주민등록증의 기원과 한국 현대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민주정치 아래서 투표 행위의 중요성이 무얼 뜻하는지 일관된 맥락을 짚어주어 시원했다(한홍구).
상업적 디지털 감시의 메커니즘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과연 프라이버시를 근대 부르주아 시민 혁명의 가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옳은지, 새로운 자본주의 지배 양상에 맞서 정치경제학적 시각에 따라 계급 격차 심화 흐름을 거슬러 나아갈 필요성을 강조한 점 시의적절했다(최철웅).
과장된 위험과 불안에 의존하는 대중들이 타자를 괴물화하도록 부추겨지는 시대에 과연 프라이버시의 내용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지 하는 문제 제기도 생각해볼 거리였다(엄기호).
앞의 강사들이 던진 문제들을 법과 인권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적 의미에 따라 심화하고 재정리해준 것, 또한 프라이버시가 인권의 제1 전제조건이 되는 근거를 제시하고 더 나아가 첨단 감시 장치가 과연 범죄율을 줄이는 데 높은 상관성을 갖는지 비판적 자료로써 실효성이 낮음을 제시해준 점도 매우 시사성이 컸다(홍성수).
근대적 감시 체계의 맥락 속에서 주민등록제도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국가 행정부가 지엽말단적 이유 때문에 또 전자 데이터 유출의 기하급수적 파급력에 대해 안이한 판단을 갖고서 전자주민증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지 명확히 제시해준 점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한상희).
강연을 마련한 진보넷과 열의를 다해 맥락을 짚어준 강사들, 단정한 편집과 부담 없는 분량으로 언제든 들춰볼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수고가 엿보인 안내서였다.
3.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주제
약간 즉자적 도식일 수도 있겠지만, 인권이 보편자라면 프라이버시는 개별자라고 생각한다. 한 개인이 주체적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존중하고 국가나 기업이라는 물리적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공간을 꾸며 나갈 자연권적 권리가 프라이버시일 것이다. 그 수많은 프라이버시권의 소유자들 하나하나에게서 공통으로 추출된 요소의 전체가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프라이버시권을 발전적 관점에서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담론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홍성수 교수가 그 맥락을 짚어주었고, 사실 사회적 약자들이 감시 체제에 대항할 수단과 권력이 취약하므로 최철웅 교수 의견대로 정치경제적 맥락을 통해 보충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소유권적 개념보다는 내면으로 물러날 권리로 사유해야 한다는 엄기호 교수의 의견은 약간 모호한 면이 있고 자칫 프라이버시의 역사성과 보편성을 부차시할 우려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자본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정치적 중요성-물론 개인이 최우선이라는 뜻은 아니다-이 확보되어야 사회의 역동성과 구심력 형성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갖는 독립적 주체성을 옹호하는 것 또한 공동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하나는 인권 그 자체, 프라이버시 그 자체의 옹호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보편 인권을 구현하는 프리이버시의 각 주체들이 다양한 삶의 문제들을 놓고 각자 여러 시공간(현장)에서 더 나은 삶을 향해 싸우는 운동도 강화되어야 한다. 국가와 민간의 개인정보 수집, 감시 등에 대하여 역으로 감시해 나가는 힘 또한 여러 부문과 주제들의 연대적 가치와 맞물릴 때 더 커질 것 같다. 그 맥락을 더 밝혀낸다면 획기적이지 않을까 싶다.
4.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까?
책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면, 앞으로가 문제이다. 우선 일상을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국가와 기업 마케팅 행태에 의심을 품고 따져볼 일이다. 편리함에 숨어 있는 감시의 그늘을 경계하자. 또한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행위의 목적을 뚜렷이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터넷은 즐거운 도구일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 사로잡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프라인의 삶이 척박한데 온라인에 너무 의존하면 과잉된 자기애에 빠지지 않을까?
또한 맥락과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디지털 세계는 보기 좋게 가공된 무한 조합체들이 떠돌아다닌다. 탈맥락적이고 도착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히려 개인의 독립성이 약화될 위험도 있다. 미디어와 정보 주체를 둘러싼 세계의 역사성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참 대안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2012.07.10,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