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과연 다시 설 수 있을까?

먼저 선거를 위한 야권 단일화 노선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모든 시선을 2012년 대선에 맞춰놓고 보면 해결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미 권력자는 심판받았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목소리 높이던 이명박 정부도 거대 여당의 지원 속에서조차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권이었음은 이미 자명해진 일. 과연 견제받고 감시받지 않는 국가 권력이 어느 정도 막장일 수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런 한편 1998년 IMF 이후 신자유주의 모델의 한국 사회 이식은 실패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니 부자유스러운 것이다. 위험한 질주였다. 이런 연장선에서 보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은 하나의 궤도를 통과해온 셈이다. 그 정점인 이명박 정부 아래서 한층 심화된 소득 격차, 한반도 평화 국면 후퇴, 국민 불안 심화, 한국 사회 미래 불투명, 이게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사람들의 요구는 다양하고 복잡해졌는데 오히려 정치 상황은 과거 회귀적이다. 야권 단일화는 이런 과거 회귀적 흐름에 붙들리는 노선이다. 민주주의를 심화하겠다면 그 내용이 다양화될 필요가 있었는데, 1987년 이후 견제와 비판과 대안 정치가 튼튼히 뿌리내리지 못하고 거품이 많이 끼어 있었다. 거품은 제거되었으면 한다.

오래된 민주대연합 노선을 조금 더 세련되게 심화한 정도로는 힘들다고 본다. 결국 보수-자유주의-진보의 삼자 구도가 정립되어야 하고, 진보정당이라면 더 이상은 정체성이 불분명한 후보 단일화 노선을 재고하고 독자 역량을 키웠으면 한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은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난 10년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부유세 도입,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교육 개혁이나 공공성 의제는 진보정당운동이 기여한 바가 있다. 약한 수준에서나마 조금씩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올해 대선에서는 지난 10년을 평가하고 독자 후보를 중심으로 향후 한국 사회의 그림을 제시하고 정책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유권자의 선택 여지를 넓혀놓아야 한다. 그래도 야권 단일화를 강요한다면 선거제도 개선과 행정부 참여를 보장받아야 한다. 아니면 끝까지 가야 한다. 이번에 진보신당이 2%에 못 미친 건 문제였다. 서투른 당 운영과 경직된 소통 문화, 소극적 선거운동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녹색당은 존재감이 없었다. 독일 녹색당과 한국의 녹색정치의 차이는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의 역할을 다해내지 못할 것이다. 많은 과제를 해결하고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갖춰져야 한다.

우선 현재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마무리하고 진성당원제를 재정립했으면 한다. 당원 총투표에 따라 경쟁 부문 비례대표 사퇴를 결정한다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선거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여부를 놓고 처음 열린 중앙운영위원회 회의를 보았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총투표 여부가 어느 정도는 고려 사항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번 전국중앙위원회 사건으로 그 주장은 정당성을 잃었다. 중앙위원 명부 신뢰도, 당원들의 의사 진행 방해, 무리한 만장일치 강행 모두 민주노동당 시절의 진성당원제의 효력이 빛을 바랬음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이미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진성당원제의 근간은 흔들려온 것 같다. 그리고 무리한 통합을 서두른 결과가 현재의 통합진보당이다. 그리고 마침내 폭력 사태가 빚어졌다.

물론 진상조사의 부실도 인정된다. 동일 IP 투표, 주민등록번호 문제 등은 반박 여지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대리 투표나 중복 투표 여부, 온라인 투표 관리 문제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물론 현장 투표 관리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당직과 공직자 후보를 당원 직접민주주의로 선출하는 당이라면 좀 더 선거 절차에 완벽을 꾀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많은 부실이 있었고 일부 부정도 있다면 책임을 맡아 나서는 쪽이 쇄신의 출발점을 제시할 수 있다. 경쟁 부문 비례대표는 먼저 사퇴해야 한다. 청년비례대표의 경우는 추가 진상조사를 통해 가려도 된다고 본다. 즉 경쟁 비례대표는 모두 사퇴하고, 추가 진상조사를 통해 확인을 거쳐 청년비례대표도 사퇴해야 한다면 당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성당원제의 내용과 수준을 일신했으면 한다. 당권파라고 불리는 쪽에서는 고집을 그만 부렸으면 한다. 절차와 적법성을 따지기엔 이미 늦었다. 책임 공방은 향후 운신의 폭을 좁힐 뿐이다. 부디 확 버리기 바란다.

그다음으로 정파 등록제를 갖추고 공개적인 노선 경쟁을 하되,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쟁점을 만들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구시대적 낡은 색깔 논쟁을 근절하고 건설적인 정책 경쟁을 주도해 나가려는 진보정당에게 바라는 모습이다. 향후 남북한 사회 통합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반전, 반핵, 평화체제 정착, 남북간 경제협력 문제를 중심으로 미래상을 제시해야만 한다. 대안 정당이 되려면 이 문제는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세상에 더 이상 임금 투쟁 위주로는 노-노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안정된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이며, 지역사회와 직장과 산업별 연맹의 연대성을 높이는 협력 모델이 생겨야만 사회는 개혁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식 양당제 안에서도 진보적 노동운동이 가능할 거라고 믿는 듯한데,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일상을 옥죄는 한국식 자본-권력의 유착은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뿌리내릴 때만 극복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지식인들과 언론도 반성이 필요하다. 거울을 한 번 들여다봐라. 자본과 결탁한 권력은 사람들의 불안을 좋아한다. 이런 정서를 지식인들과 언론이 조장하거나, 은근슬쩍 편승하거나, 어떤 대상을 정해놓고 투사하게 되면 의도와 상관없이 시스템 속에서 갇힌 대다수 약자만 죽는다. 자본과 권력이 도덕의 외피를 뒤집어쓰면 무기가 된다. 진보는 그 허상을 깨뜨리고 삶의 실상에 접근한다. 이 싸움에서 언론과 지식 계층은 권력에 가까이 있다. 과연 한국 언론은 어떻게 진화해 나갈까? 그것도 사실 많이 궁금한 사안이다.

[2012.05.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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