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비극적인 청소년 자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연일 보도되고 학교 폭력에 대한 통계수치를 공개하겠다는 기사도 보인다. 봄은 왔으되 마음은 부서져 있다. 한창 쌀쌀하다가 갑자기 날카롭게 뜨거워지는 태양이 왠지 고맙지가 않다.
사춘기에는 정서가 예민해질 텐데 그 예민함을 좋은 쪽으로 발달시키는 게 교육 아니던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 그 자체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학문의 본질이라고 했다던데, 사실 난 지식 추구의 즐거움 자체라는 게 좀 자족적인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했지만, 또 지식을 통해 뭔가 현실적 성과를 얻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여전히 생각도 하지만, 그런 지식의 즐거움 자체가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사실 공부는 즐거워야 한다. 입시라는 목적, 그것은 결국 실용적 가치에 지식의 근본 속성을 붙들어 매는 것이니,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넘쳐나는 욕구들을 맘껏 펼쳐볼 정서적 밑바탕을 만들어주지 못할 것이다.
‘학교 폭력’이라는 용어. 이 표현이 맘에 안 든다. 학교라는 ‘장소’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라는 뜻인가? 그런데 주문처럼 입에 붙으면 정말 그렇게 된다는 말이 있다. 문제풀이의 달인을 만들기 위해 훈련시키는 양성기관인 학교. 거기서 일어나는 폭력. 이렇게 규정된 그곳에서 따뜻한 감성, 야성, 부드러운 마음이 들어설 자리는 좁아지고, 예민한 사춘기의 활력은 숨이 막힌다.
4월은 잔인한 달. 봄은 왔다. 봄소풍도 가고, 하늘도 바라보고, 좋은 음악도 듣고, 시끌벅적하게 재잘대는 교실의 장면들이 바로 교육이지 않을까? <사랑의 학교>라는 옛날 텔레비전 만화영화가 생각 나는구나. 그 만화영화 가사는 아직도 내 맘속에 남아 있다. 달달 외어보자.
"오늘은" 이라고 쓰고서
나는 잠깐 생각한다.
어떤 하루였나 하고 점수를 주게 되면 몇 점일까.
새하얀 일기장은 나의 마음
사랑의 학교 종소리 따라서
한 장 또 한 장 넘겨가면
언젠가 나의 꿈과 만날 거야.
사랑의 학교, 우리 학교
새하얀 알프스가 보이는 곳.
사랑의 학교 우리 학교
랄랄라 재미 있는 우리 학교.
봄이 가기 전에 운동장 구석에 꽃씨라도 뿌리고 도시락 까먹는 재미라도 누리는 건 어떨까. 시라도 한 편씩 읽고 쓰고 하면서 말이다. 누리는 게 삶이고, 잘 누릴 수 있게 돕는 사회이길 바라며 죽어간 넋들을 위로한다.
[2012.04.19, 2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