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마 나기사의 세계』(사토 타다오 외)

■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관

영화 <감각의 제국>, <교사형>, 그 밖의 매체를 통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관을 엿보고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마침 이 책을 구해 읽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오시마는 23살 나이에 영화사 쇼치쿠에 들어가 5년 만에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데뷔한 다음, <일본의 밤과 안개>, <백주의 살인마>, <교사형>, <소년> 등 좌절과 억압에 희생된 이들의 범죄의식을 정면으로 다룬 걸작을 만들어 전후 일본 영화계의 논쟁을 주도해 나간다. 마침내 작가의식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오시마는 해외 합작으로 <감각의 제국>을 만들어 국제적 명성을 쌓았고 노년에 뇌졸중을 겪고서도 <고하토>를 완성시키는 열정과 의욕을 보인다. 전성기의 놀라운 작가 역량이 기울었다는 평가도 있으나 오늘날 오즈 야스지로 등과 함께 일본 영화사의 거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 두 편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서, 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일본 사회와 격렬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영화는 하나의 정치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예술 또는 영화에 대한 근본 물음에 대한 그 자신의 치열한 모색의 결과가 자연스레 정치·사회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인상 깊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범죄 행위라고 말하며, 특히 개인이 아닌 집단적 범죄이기에 정말로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참으로 오시마 감독만의 독창적 각성이라고 여겨진다.

그는 범죄와 성(性), 전후 민주주의운동의 실패 등을 영화 소재로 할 때,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 영화라는 행위를 한다는 자의식을 갖고 자기 시대와 사회의 무감각과 비인간성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러기에 오시마에겐 결국 ‘무감각은 범죄다’라는 주장이 진정성을 담게 된다.

한국의 경우 유현목, 김기영 정도의 감독이 전후 사회의 그늘진 세계를 은유적이고도 한편 도발적인 영상으로 접근했다고 해야 할까? 유현목의 <오발탄>은 빈곤 계급의 참담한 현실을 분단 모순 속에서 생생히 다루었고, 김기영의 <하녀>는 산업화 시대의 인간 군상을 공포와 욕망의 구조 속에서 고발한 명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오시마 나기사처럼 강렬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작품 전반을 이끌고 나갔던 인물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사회 문제를 너무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룬 영화는 쉽게 허용될 수 없었던 사회 풍토, 그렇지 않으면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사이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대중과 만나고는 곧 잊혀버리는 문화 때문에 그런 면도 있다. 이런 맥락을 종합해 보건대, 오시마 나기사는 영화를 자신의 언어와 철학으로 완벽에 가까울 만큼 포섭해 낸 사람이 아닐까 한다.

■ 차갑지만 진지하고 뜨거운 영화인

<윤복이의 일기>, <교사형>과 같은 영화에서 오시마 감독은 재일조선인의 비극적 운명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발견한 일본인의 모습을 규탄하면서도, 보편적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의 영화는 기껏해야 두 편 제대로 봤을 뿐이지만, 받았던 느낌이 강렬했던 이유가 있다. 소재나 문제의식 자체도 민감하지만 그러한 테마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어떤 차가운 현실감이 느껴졌다. <교사형>에 등장하는 소녀 강간살인범이자 재일조선인 R의 표정과 대사,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 곧 사형 집행장의 간수, 검사, 성직자 들의 풍자적이면서도 의미가 압축된 대사들이 그러했다. <감각의 제국>에 등장하는 자극적 성애 장면이나 살인 장면도 감독의 차가운 관찰자 시선이 느껴지면서 그 시선을 알아채고는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들도 그랬다.

한편 이렇게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선 이면에는 감독이 옹호하는 인간의 어떤 본성이나 운명에 대한 애착이 강렬히 절규하는 듯한 느낌도 얻을 수 있다. 재일조선인 학생인 R이 소녀를 강간살인한 사실을 놓고 범죄자라는 자기 인식을 갖지 못하는 이면에는 전후 일본 사회에서 가난과 배척의 삶 속에 내팽겨쳐진 삶의 고통이 억압되어 있다. R에게 범행 동기를 인식하게 만들고자, 술주정뱅이인 R의 아버지의 가난한 집안 풍경을 연극으로 재현하는 장면에는 뜻밖에도 한국의 오래된 일제시대 자장가가 울려나온다.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들라.

하늘나라 아기별도 엄마 품에 잠든다

둥둥 아기 잠 자거라, 예쁜 아기 자장.

어렸을 때 들어 익힌 이 자장가를 들으며 나는 오시마 감독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시선이 단순한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일종의 동화(同化)된 정서와 맞물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감각의 제국>에서는 하류 계급의 윤락 여성 아베 사다와 그의 정부(情夫)이자 주인인 키치의 마지막 성애 장면이 매우 선명한 색채의 영상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사다가 키치를 죽인 뒤에, 잠시 꿈을 꾸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넓은 야외 운동장의 벤치에서 사다와 키치가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음성과 몸짓이 스쳐 지나간다. 이들의 욕망과 사랑 속에 숨어 있는 어떤 인간적 절규를 무감각한 세상에서 오히려 보호하려는 감독의 심정이 느껴진다.

이런 모든 영화적 구성과 수법들이 오시마로 하여금 인간의 구체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현실감으로 그려낸다. 이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결코 드러낼 수 없는,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이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위선과 폭력의 세태를 고발하고 있다고 보인다. 오시마는 영화라는 범죄 행위를 통해 그것을 범죄 행위로 몰고 간 야만의 현실에 일대 공격을 가하고 있다.

 ■ 공통된 이미지

<감각의 제국> 시나리오가 출판되었을 때 오시마는 일본 법정에 외설죄로 고발되지만 ‘외설’이란 개념과 법의 정신이 양립할 수 없다는 논리정연한 법정 진술을 통해 결국 무죄 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이 진술 속에 아주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그는 “만약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지난날 자유와 해방이 위로부터 온다고 생각했던 지식인의 성향”이었다고 하면서, 앞으로는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사는 한 여자가 경험한 고통 이외에 어느 곳으로부터도 자신의 신념을 얻기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작품이 표현하는 바는 “사다(<감각의 제국>)와 세키(<열정의 제국>)처 럼 자신들의 어려움을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살았던 삶의 빛으로 인해 빛나는 것이며, 그러기에 표현의 자유의 상대적 중요성을 혼돈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법정 투쟁은 성적 표현의 자유를 넓히는 투쟁이지만, 오히려 성의 표현을 보고 듣고 읽는 이들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한다. 곧 “사다와 세키처럼 괴로워하는 여성들에 대한 사랑을 위한 싸움”이라고 말이다.

결국 오시마 나기사는 범죄 행위로 낙인 찍혀버린 영화의 세계를, 그렇게 판결하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 이 책 서문 앞 페이지에 실린 그의 발언을 인용해 본다.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이미지를 찾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면서 느끼는 ‘공통된 이미지’는 무엇일까? 오시마는 위선에 가득 찬 부당한 사회의 억압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욕망을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가 맞닥뜨리기를 회피하는 바로 그 공통의 이미지를 찾아 보여준 뛰어난 예술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0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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