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Sozialreform oder Revolution?』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지음/김경미˙송병헌 옮김과 해제)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어느 한 켠에 움츠리고 있던 그녀를 불러내게 된 건, 후지타 쇼조의 책에서 저자가 그녀의 이름을 언급한 것에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동네 도서관에 빌려 읽게 된, 그녀의 연재 논문을 엮어낸 이 책은 분량은 적지만 쉬운 책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 이론의 대표 주자인 베른슈타인을 비판하는 그의 논리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단단히 밀착된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자본주의 위기의 분석과 진단에서 그녀만의 독특한 화법과 사유방식을 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해제 등을 참조해 보건대, 그녀는 프롤레타리아의 정권 획득을 통한 사회주의의 실질적 수행이라는 최종 목표에 일생을 던진 운동가이자 이론가이며, 한편 당과 인민 대중의 관계를 놓고 레닌과 대립하기도 했지만 서로 간에 첨예한 논쟁을 거치며 암묵적 신뢰를 쌓은 듯하다.
그녀는 수정주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위기에 적응하는 수단이라고 베른슈타인이 내세운 신용, 기업가 조직(대표적으로 카르텔), 발전한 커뮤니케이션 수단 등은 사실 자본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음을 논증해 낸다.
신용은 자본주의의 ‘안정성’을 제거하고 유동성을 최대화하여 자본의 잠재력을 높이는데, 이는 잠재력의 충돌을 가속화하면서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의 모순, 곧 생산은 극대화하고 교환은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자본이 이윤율 저하를 막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하여 국외에서 낮은 이윤율로 생산을 확장하는 한편, 일부 자본은 방치하거나 위기에 사용하고자 쌓아놓는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판매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하면 상당 부분 사회화되었던 자본이 다시금 사적 자본으로 되돌아가고, 좁아진 판매시장의 빈틈을 차지하기 위해 기업가 조직(카르텔 등)은 파열하고 더욱 강화된 자유경쟁으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른슈타인이 주목한 중소 자본 곧 중소기업은, 기술 혁신을 통해 오래되고 안정된 산업 부분에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거나 대자본이 장악하지 않은 부분을 창출하는데, 결국 이것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일반적인 진로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났다가 제거되는 경향을 띠며 결국 대자본에게 퇴출당하게 된다. 이는 오래된 산업 부분에서 기업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자본이 지속적으로 커지는 가운데, 새로운 부문의 소자본의 생존 기간을 단축시키고, 생산과 투자방식의 급속한 변화를 낳는다고 한다. 이러한 신진대사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자본 비율이 소수 대자본의 손에 장악됨으로써 생산의 창조적 생명력은 소진되고 결국 자본주의 발전은 소자본과 함께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의 적응력과 더 많은 부의 공평한 분배’라는 점에 주목하여 더 많은 민주주의의 의회적 실현을 주장했던 베른슈타인에 맞서, 결정적으로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주주의 역시 역사의 시공간 속에서 그 경제적 토대의 발전 양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해 왔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그녀는 민주주의 또한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필연적’ 과정에 부합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은 노동운동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녀는 대중의 자발성에 기초한 프롤레타리아의 정권 장악과 사회주의 승리의 가능성을 러시아 혁명에서 보았는데, 다만 당의 지도와 역할에 대해서 ‘교육과 선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레닌의 지도 이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대표 이론가 카우츠키,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대표자 레닌에 견주면 그녀는 소수파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 이론의 급진성과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지닌 논증의 엄밀성은, 레닌으로 하여금 ‘독수리’라는 비유를 사용하게 했다. 곧 로자가 죽은 뒤 그녀 이론을 인용하여 제2 인터내셔널의 복원을 시도하는 이들이 ‘닭’이라면 로자는 ‘독수리’라고 비유했다. 독수리는 닭보다 낮게 날 수는 있어도 닭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독수리의 높이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현재 신자유주의의 수명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하는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의 견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점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또한 그녀가 죽은 뒤 유럽 사민주의의 실험과 적응이 일면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해도, 노동운동의 침체와 유럽 사회주의의 이념적 좌표가 실종된 듯한 지금, 그녀가 꿈꾼 사회주의의 가치는 무엇이었으며 그토록 옹호하던 대중의 자발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은 정치적 리더십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일까?
그녀의 마지막 최후가 반대 세력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었던 만큼, 비교적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감수성 예민했던 소녀였을 로자가 이러한 철두철미한 사회주의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베른슈타인의 이념과 개념에 대한 비판에서 엿보이는 ‘개념’과 ‘사실’에 대한 그녀의 방법은 어떤 의의를 갖는 것인가?
그녀는 불행과 위험을 택했지만, 역사 속에서 다시금 우리에게 묻고 있지는 않은가?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