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되는 듯한 그의 저서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는, 1952년 일본 ‘사상의 과학 연구회’가 펴내기 시작한 공동연구서 『전향轉向』(헤이본사平凡社 간행)의 제3권을 위한 입문서 성격을 띤다고 저자는 운을 뗀다. 본래 상권(태평양 전쟁 이전)의 두 편, 중권(1939, 1940년~)의 논문 한 편, 하권(戰後)의 논문 한 편, 이렇게 논문 네 편을 이와나미 출판사岩波書店에서 모아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轉向の思想史的硏究』라는 단행본으로 1975년에 출판하였고, 이는 수정·보완을 거쳐 1997년 미스즈 서방みすず書房에서 『후지타 쇼조 저작집』 전10권의 제2권으로 재출간하였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일본 정치사상계의 거물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학파들 가운데 후지타 쇼조藤田省三, 마쓰시타 게이치松下圭一, 하시카와 분조橋川文三는 그의 스승의 이론이 지닌 문제점과 한계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독자적인 이론체계를 세운 마루야마 학파의 ‘이단자’들이라고 한다. 특히 후지타 쇼조는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를 통해 일본 정치체제가 ‘공동체적 국가’ 요소와 근대 ‘정치국가’적 요소의 결합에 따른 이중성을 띠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그에게 ‘전향’이란, 단순히 국가체제의 강요에 따른 반대자의 굴복이나 사상의 자리 이동을 뜻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래 사상적 명확성이나 근거가 없이 ‘질질 끄는 상황추수적’ 사태로 전 국민을 일체화하는 천황중심주의의 특성을 간파하는 한편, 전쟁이라는 극단적 국민동원체제를 거치며 형성되는 일본 사회의 작지만 미묘한 ‘독립화 경향’을 추적해 들어가고 있다.
그는 일본인에게는 국가나 사회보다 ‘자연’이 있을 뿐이라며 천황 역시도 그러한 자연적 원리에 따른 하나의 상징적 존재가 되어갔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 공산주의운동이 경찰과 재판관들에 의해 가혹한 탄압을 거치면서 말 그대로의 ‘굴복, 위장 전향, 표면적 전향, 실질적 비전향’ 등의 범주로 분화해 가는 과정은,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 한 켠에서 ‘시장’과 동등한 ‘교환소’가 등장하는 사상적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곧 천황을 중심으로 뭉친 일본 사회의 특질 한가운데서도 오히려 ‘독립적 시민, 비판정신 또는 새로운 희망’의 사상적 토대가 자라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불을 댕긴 공산주의자 후쿠모토 가즈오福本和夫는 ‘대중의 결합 전의 깨끗한 분리’를 주창하였지만, 이는 또 다른 엘리트주의로 흘렀고, 이후 수많은 논쟁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후지타는 자기 사회의 ‘천황제 지배원리’라는 특질이 ‘마르크스주의’의 객관적 원리와 부딪히는 지점을 철두철미하게 파헤치면서, 인권과 평화와 인류 연대라는 가치가 민주주의와 함께 완성되는 과정이 험난하지만 절체절명의 과제임을 염두에 두고 살아온 학자이다. 도쿄 대학 강의 교수 자리에서 마루야마 제자들에게 밀려 파면된 비주류이면서, 타자인 한국인에게 일본 사회를 심층적이고 분명하게 이해시키는 드문 지식인이다.
일제 식민지 경험을 두고서 ‘근대화 발전론’이라는 표면적 인식이 한국 사학계에 등장하여 반발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과연 한국 지식인은 어떤 ‘독립적 정신’을 힘있게 문맥화해야 할 것인가? 식민지 경험이 우리의 인식 속에 어느 정도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제대로 규명해 낸 작업이 과연 있었는지 의문이다.
해방 공간의 좌·우 이념 대립과 반세기 넘는 분단 이데올로기가 지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걸림돌이기만 해서는, 이후 경제물신주의가 활보하게 될 한국-동아시아-세계의 순환구조에서 인간다운 삶을 설계하기란 힘들 것이다. 진보는 선이요 보수는 악이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정말 혹독하리만큼 우리 안의 식민지적 인식구조와 그것이 낳는 사회의 발전 단계를 진단할 만한 사상이 필요하다.
명망가의 말 한마디, 특정 이력과 편력에 기댄 찬양 일색의 분파주의에 기울거나, 드물게 존재하는 고심에 찬 연구가의 뛰어난 업적이 학계와 정치권력의 공생 관계 때문에 주변부에서 소진되어만 간다면, 우리 사회의 참된 ‘정신적 독립’은 강도나 깊이를 더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어떤 종교적 원리에 따르는 강력한 금욕주의 또는 반문명주의가 자리를 튼다면, 결국 한국 사회는 가벼운 다수와 비장한 소수, 그리고 양자를 배회하는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정신구조에 갇혀 비명을 내지를 것이며, 이는 또 다른 한국식 전체주의 문화가 나타나는 토양이 되고 말 것이다.
[2008.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