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쇼조,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全體主義の時代經驗)』

― 후지타 쇼조(藤田省三) 지음/이순애 엮음, 이홍락 옮김

1. 사유의 힘

   진정한 ‘사유(思惟)’란 무엇일까? 일정한 시간, 또 어떤 공간에 붙들려 살아가는 한 인간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현상, 부딪히는 사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만나고 그것들과 소통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후지타 쇼조는 쉽지 않은 질문과 과제를 던지고 있다.

   2차 대전의 패배 직후와 이전, 곧 전전(戰前)과 전후(戰後)의 일본 정신 세계를 메이지 시대까지 끌고 올라가는 후지타는 결국 자연원리로서 성립했던 천황제가, 일본 사상계의 전향 곧 자기의 이론적 출발점을 확정하여 저항하려는 움직임에 은근슬쩍 들러붙어, 더욱더 일원적이고 상징화된 ‘천황지배체제’로 자리 잡는 과정을 내재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어름어름하면서 어느새 일본 사회는 고도성장과 맞물리며 안락을 향해 몰입해 간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신품(新品)으로 제조되는 과정이 지속되고 제품 이전의 ‘가능성’에 대한 태고적 경험이 배제되고 만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작동 원리는 고도화한 천황제 지배원리, 곧 관료제라는 기구를 통해 모든 것이 저항 없이 조절되는 데 있다고 쇼조는 밝힌다. 그리고 일본 정신사에서 천황제의 물적 조건을 거의 남김없이 밝혀냈다고 그 스스로 평가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보편원리와 천황지배체제가 대립하는 지점에서 그의 이론적 사색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현재를 반성하기 위해 역사의 ‘경험’이 비추어주는 정신적 대립 지점에서 그는 외롭게 투쟁하며 현대의 이성이 지향해야 할 바를 아주 고된 사유의 과정을 통해 모색해 내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의 작동 원리, 그 내적 구조를 분석하고 여기에 맞서는 역사적 투쟁물인 마르크스주의의 뛰어난 점을 대비시켜 그 가운데 자기 사상의 출발점을 확정하는 그의 사유 태도는, 다만 뛰어난 이론적 소양에서만이 아니라 시대의 불행에 대한 그만의 경험과 또한 성찰이 있었다고 느껴진다.

   2.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

   역사는 시간의 단순한 축적을 넘어서 어떤 경험의 총체로서 우리 정신과 육체에 새겨진 응고물·침전물이다. 이것이 활성화 작용을 일으키면 인간은 어떤 지향을 갖고 움직이게 되는데 이 힘을 어떻게 발견해 낼 수 있는가란, 곧 역사에서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문제에 닿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의 마지막 부분 「마르크스주의의 대차대조표」라는 긴 대담문에서 후지타는 마르크스의구상, 곧 ‘청사진’을 근거로 그 사상의 손익을 계산하려는 대담자에 대해 줄곧 근대 청사진에 관한 비판적 입장에서 대답한다. 청사진에 입각한 것은 이미 근대 형성기의 뛰어난 학자들이 시도했으나, 역사적 경험은 그 구상의 정확한 예언과 일치한 부분도 있고 어긋난 부분도 있으며 당시에는 일치하지 않길 바란 예언인데도 불행히 일치해 버린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붕괴론은 비록 어긋났지만, 그가 「공산당 선언」에서 밝힌 ‘부르주아 계급의 획기성’은 지금도 유효하며 특히 『자본론』 제1권 24장의 원시적 축적 과정에 따른 사회사에 대한 판단과 서술은 놀라운 것이라 한다. 이는 일본의 농업사 서술 문제에서 일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느 걸출한 이론가의 세계에 대한 파악과 미래적 구상은 그 자체로서 지닌 독창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의 역사적 공헌도를 평가할 때는 그 구상 자체보다는 ‘그 구상이 나오게 된 역사적 조건의 현재적 의미가 오늘날 어떻게 드러나는가’ 하는 데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자세, 곧 후지타 쇼조가 시대를 파악하고 역사의 경험에서 오늘날에 절실한 과제를 추출해 내는 태도는 바로 사회의 불행을 떠맡고자 하는 지식인의 운명과 정체성에 대해 엄숙한 반성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3. 움직일 수 없는 작은 존재

   그에게는 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두 형이 있고, 산파를 해서 살림을 해가던 어머니가 있다. 그는 1952년 동경대 공연장에 침입한 사복경찰이 학생 극단 포포로를 탄압하는 데 대응하고자, 경찰수첩의 전모를 알리는 비라를 배포하여 당국의 음모를 폭로하기도 하며, 이 일을 하는 조건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7년여 만에 탈당한다. 그는 지금도 재일 조선인 문제에 대한 발언에 힘을 보태면서, 재일 조선인의 삶에 비친 일본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간취해 내고 이를 분석·비판하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이성과 양심, 절망과 연대의 노력은, 일본 천황제 지배 원리의 해부와 총괄이라는 이론적 입장, 그리고 일상의 경험에 대한 고통스런 사유 경험을 자신만의 고유 세계 속에서 녹여낸 결과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의 권력관계에서는 설령 ‘패배’라 하더라도 운동이 목표하는 가치가 사회 속에 스며들어 육화(肉化)되어 간다면, 그거야 말로 운동의 승리인 것이다. 그 경우에는 권력까지도 이 가치체계가 구속하거나 지배하게 된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의, 앞에서 언급한 삼투와 사회에의 구조화를 의미한다.……이와 같은 운동의 ‘승리관’과 현세적 ‘승리관’의 결정적 차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 소멸·실패의 계열에 속하는 ‘최후의 경험’을 고통스럽게 경험하려 하는 자 앞에는 의외로 커다란 지평을 지닌 새로운 경험의 영역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그것이 인간 경험의 재생을 담당했던 인류사적 응답의 방법인 한 그 길을 걷는 자들 가운데서 움직일 수 없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신적 야당이 생겨날 것임에 틀림없다. 그와 같은 움직일 수 없는 작은 존재는 그것이 바깥으로부터 움직일 수 없는 것인 만큼 오히려 다수파를 움직이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후지타 쇼조는 오늘날의 막연한 낙관주의·비관주의자들에게 다시 한 번 경험과 사유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외치고 있는 듯하다. 그의 삶 속에 침전되어 온 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보기 드문 역작이다.

[2008.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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