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한 부분들>
– 마르크스는 «자본론» 3권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의 장기적 경향은 착취율이 상승하더라도 이윤율은 하락할 정도까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주장. 따라서 이 경향을 극복하자면 착취율을 대단히 상승시켜야 하는데, 그람시가 보기에도 그러한 노력이 ‘포드주의적’인 노동의 강화와 합리화 정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 미국주의를 위한 예비 조건은 ‘합리적인 인구학적 구성’, 곧 생산 세계에서 어떠한 긴요한 기능도 하지 않는, 순전히 기생적인 많은 계급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렵의 ‘전통’이나 ‘문명’은 그 반대로 과거 역사의 ‘풍부함’과 ‘복합성’이 낳은 그러한 계급들이 많이 존재한다: 문관 요인과 지식인, 성직자와 지주, 해적적인 상업과 직업 군인들의 포화와 화석화. ‘선조의 유산’과 경제사(史)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게으르고 쓸모없는 대중들로 이루어진 침전물.
– 괴테가 나폴리인은 매우 적극적이며 근면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은 옳았지만, 그들의 근면성의 현실적 결과는 생산적인 계급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폴리는 다수의 남부 지주들이 자신의 농장으로부터 들어온 수입을 소비하는 도시. 소규모 제작업, 상품과 용역의 공급이 수많은 뜨내기들로 인해 분점되는 행상 거래, 운송과 도매업 등을 중심으로 편성.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고 축적한다는 뜻에서의 ‘생산적’인 공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만 차지.
– 농촌 지역의 중·소 규모의 토지 소유권이 농민 경작자가 아닌 소도시 부르주아에게 있고 토지는 원시적 소작을 주거나 지대를 받고 임대.
→ 총 토지 수입에 비례하여 ‘연금’과 ‘지대’에 의존하여 사는 중소 부르주아지들이 대단히 많았다는 뜻. 이들이 캉디드(Candide) 같은 일종의 경제문학에서 이른바 ‘저축 생산자’: 농민의 원시적인 노동에서 자신의 생계를 뽑아내고 더 나아가 기를 쓰고 저축하려 드는 비생산적인 계층.
→ 가장 끔찍하고 불건강한 자본 축적 방식. 그 축적이 기아 직전의 농민에 대한 고약한 고리대금적 착취에 기초한 것이고 과도하게 낭비적이기 때문.
– 국가 행정이 절대적 기생주의의 또 다른 원천: 이탈리아 인구의 약 60퍼센트(400만 명)가 국가 예산에 의지하여 산다고 추정. 40대 초반의 상대적으로 젊은 남자들도 25년간 국가 복무 후에는 생산적 활동에 투신하는 것도 회피하고 연금으로만 살아가려 한다.
– 육체 노동에 대한 사제 교단의 불경화. 장기적인 이민과 여성의 낮은 고용 비율에 따른 생산 작업 구성의 ‘불건강함’. 노동 잠재력을 감소시키는 풍토병(말라리아), 하층 농민의 영양 부족, 풍토적인 실업 상태. 절대적으로 기생적인 인구 부분과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방대한 간접적인 기생적 대중들. 상업이나 중개 기능과 같은 반(半)기생적인 부분.
→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정도 차이는 있지만 유럽 모든 나라에도 존재하며,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에는 더욱 나쁜 형태로 존재. 이러한 사실이 그 나라들의 역사적 침체와 정치·군사적 무기력을 설명한다.
– 미국은 과거의 역사 단계로 인하여 남겨진 끈질긴 기생적 침전물이 없었기 때문에 공업, 특히 상업은 건전한 기초 위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 포드의 실험: 생산물의 수송과 분배를 직접 경영. 생산 비용을 줄여 높은 임금과 낮은 판매 가격 실현. 강제(지역적 기초를 지닌 노동계급 단체의 파괴)와 설득(고임금, 다양한 사회적 급여, 극히 세심한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선전)을 기술적으로 결합시켜 생산과 노동을 합리화. 헤게모니가 공장 내부에서 생겼으며 헤게모니 행사에 요구되는 전문적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매개물은 적은 양으로도 충분.
→ ‘구조’가 상부구조들을 더욱 직접적으로 지배하고, 상부구조들 또한 합리화되어 있는(단순화되고 수적으로 감소되어 있는) 합리화된 사회의 모습.
– 미국에서의 투쟁은 아직 ‘산업의 자유’에 저항하는 동업조합(craft)의 권리 보호 투쟁: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투쟁과 비슷. 미국의 노동조합은 무엇보다도 기능 직인의 권리에 대한 조합주의적 표현. 미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경제적 영역에서와 같은 역사적 단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후진적 상태. 국민의 동질성 부족, 혼합된 인종·문화들과 흑인 문제도 참작되어야 한다.
– 이탈리아에서도 포드주의적인 팡파르는 울렸으나, 뒤이어 농촌주의로의 개종(무솔리니가 제창한 ‘이탈리아를 농촌화하라’)이 일어났다. 계몽주의의 전형인 도시들이 비난받았고 동업조합의 권리와 산업 자유에 대한 투쟁이 말하여졌다.
– 이탈리아의 노동자들은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는 혁신, 곧 작업의 합리화나 더 완벽한 형태의 자동화의 도입, 기업복합체에 대한 더 완벽한 기술적 조직화의 도입에 대해 적극적으로든 수동적으로든 결코 반대한 적이 없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반대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자유로운 노동조합이 거의 해체되다시피 하고 대신에 서로 고립된 공장 단위의 노동자 조직체가 들어섰다. 반면에 이탈리아에서는 단위 공장을 노동조합 조직의 중심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격렬한 비난을 받고 단호히 분쇄되었다.
→ 이탈리아에 더 새롭고 더 현대적인 요건들을 도입하였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끈질기게 지지하였던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몇몇 기업가들은 이러한 운동을 이해하고 그것을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 미국화를 위해서는 특정한 환경, 특정한 사회구조(적어도 그러한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 그리고 특정한 유형의 국가가 요구된다. 이 국가는 자유주의적인 국가여야 한다. 이것은 자유교역 자유주의나 사실적인 정치적 자유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더 기본적인 뜻에서의 자유주의, 곧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경제적 개인주의라는 뜻에서의 자유주의 국가이다. 이것은 ‘시민사회’의 수준에서 역사의 발전을 통하여 독자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집중과 독점이라는 제도에 이를 것이다.
– 실제로 조합체적인 조류는 중간계급의 무너져가는 위치를 떠받쳐 주는 쪽으로 작용했지 그것을 없애는 쪽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으며, 낡은 기초로부터 생기는 기득권으로 인하여, 추진력이 되기보다는 더욱더 기존 질서를 온존시키는 기구가 되었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조합체적인 조류 또한 실업 상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용된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수준을 확보해야 하는데, 만약 자유 경쟁에 맡긴다면 그 수준마저도 무너지고 큰 사회적 교란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간 계급의 실업자들을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고용, 곧 생산적이 아니라 조직적인 고용을 낳아야 하는 것이다.
→ 그람시가 ‘조합체적 조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때로 파시즘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파시즘 이전의 이탈리아 사회에서 이미 주요한 세력이 되었던 조직화된 조합주의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이 조류는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합리화 지향의 요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가톨릭과 개량주의적인 사회주의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무솔리니하에서, 특히 1930년 이후에 추진된 조합체적 경제는 이러한 비파시즘적인 운동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 성적 본능은 사회의 발전 과정 속에서 사회로부터 가장 심한 억압을 받았다. 성적 본능을, 그것이 빚어내는 말썽거리와 그것에 부여되는 왜곡 때문에 ‘제한’한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런’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연’에의 호소가 유행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문헌 또한 성적 본능의 제한에 대한 일종의 비판.
– 재생산(번식)의 경제적 기능은 사회 전체의 총체성과 관계되는 일반적 사실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생산을 위하여, 그리고 정상적인 까닭(연령·질병)으로 인한 인구 부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연령 집단들 사이의 일정한 비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평균 수명을 연장시킨 의학적 진보로 인하여 성문제는 경제적인 사실의 기본적·자율적인 측면으로서 갈수록 더 중요해졌으며, 또 이러한 성적 측면이 이번에는 ‘상부구조적’ 질서의 복잡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 공업 지역에서의 생활에는 일반적인 도제 기간, 곧 특정한 작업 조건과 영양과 주택과 관습 들에 대한 심리적·신체적 적응 과정이 요구된다. 이것은 ‘자연적’이거나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얻어내야 할 어떤 것이며, 그렇게 얻어진 도시적인 특성은 유전적으로 전해 내려가거나 유년기와 청년기 사이에 흡수되거나 한다. 따라서 도시에서 낮은 출생률은, 도시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오는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대량적인 지출을 요구하며, 도시의 사회·정치적 구성에 끊임없는 변화를 초래하고, 그리하여 헤게모니의 문제가 제기되는 지형도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간다.
– 여성이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진정한 독립성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적 관계 속에서의 자기 자신과 자신의 역할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도 얻을 수 있기 전에는, 성문제는 계속해서 불건강한 성격을 많이 가질 것이며, 따라서 새로운 입법화의 추진은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할 것이다. 성적 영역에서의 일면적인 강제로 인하여 일으킨 모든 위기는 ‘낭만적인’ 반동을 분출시키며 이것은 조직화된 합법적인 매춘의 폐기로 인하여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요인들 때문에 성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제한도, 그리고 생산과 작업의 새로운 방식에 적합한 새로운 성적 윤리를 만들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된다.
– 기업가들(특히 포드)이 자신들이 고용한 사람들의 성적인 모든 문제와 고용인들의 가정 문제 일반에 대해 어떤 식으로 간여했는가: 주류의 제조·판매 금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간여의 ‘청교도적인’ 겉모습에 미혹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간여의 진짜 이유는, 생산과 작업의 합리화로 인하여 요구되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성적 본능이 적절히 제한되기 전에는, 다시 말하여 성적 본능 또한 합리화되기 전에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 ‘감정적’ 또는 유사 감정적인 갈등과 관계된 일련의 모든 문제들에서 여성에게 매우 유리하게 되어 있는, 앵글로 색슨 국가들에서의 법제화의 기원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성문제를 규제하고 엄정히 다루겠다는 시도이지만 그 목적을 이룬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가장 나쁜 뜻에서의 불건강한 ‘여권론적’ 일탈을 위한 길을 열어놓았으며 (상층계급들의) 여성들에게 역설적인 사회적 위치를 만들어냈다.
→ 그람시가 어떤 법제화를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는 불분명. 그러나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이혼과 헤어진 부모의 자녀들의 후견에 대한 법제화는 이탈리의 그것보다 훨썬 더 앞섰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건강한 여권론적’ 일탈이라는 말은, 유리한 이혼 처리로 인하여 가능해진 경제적 독립을 토대로 얻어진 성적 해방이라는, 미국 상층계급의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 루스벨트의 등장에 이어 일어난 미국에서의 위기: 루이 15세가 죽은 후 일어난 프랑스에서의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 주류의 양조·판매 금지와 거기에서 비롯된 강도 행위들은 이전 시대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그 위기는 노동 대중에게는 단지 표면적으로만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 중 여성들을 타락시킨다는 점에서 단지 간접적으로만 영향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들 대중은 생활과 노동의 새로운 체계에 요구되는 습관과 관습을 이미 얻었거나, 아니면 생존을 위한 기본적 필요라는 강제의 압박 밑에 계속 놓였기 때문이다. 주류의 양조·판매 금지에 대한 반대는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밀조·판매·강도 행위들을 통해 나타나는 부패는 상층계급들 사이에서 만연했다.
– 전후의 도덕상 위기: 전시의 생활과 참호 속에서의 생활을 위한 강제적인 압력은 특히 젊은이들 대중의 가장 정상적인 성적 본능조차 억제하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하자 이것이 위기를 불러일으켰고, 위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하여 양성(兩性)간의 수적 비율에서 불균형이 영속화되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한층 격화. 성생활과 관련된 제도들은 심각하게 동요하였으며 새로운 형태의 계몽적인 유토피아가 성문제를 둘러싸고 개진되었다.
→ 새로운 작업 방식(테일러주의와 합리화 일반)과 갈등하며 더욱 격렬해졌다: 성적 본능에 대한 엄격한 규율(신경체계의 수준), 넓은 뜻에서의 ‘가족’(가족 체계의 특정 형태가 아님)의 강화, 성관계에서의 규제와 안전성 강화를 요구.
– 계몽적이고 방종한 성 개념: 생산적 노동과 긴밀히 연결되지 않은 계급들에 고유한 것이며 그 계급들로 인하여 노동계급들 속에도 유포. 미덕을 설교하는 자들은 말로는 그 미덕을 존경하면서도 실천하지는 않는다. 위선은 계층의 문제이지 전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지속될 수 없는 상황이며 반드시 방탕의 위기로 연결된다. 그러나 그때에 대중들은 이미 그 덕목을 흡수하여 점차로 동요되지 않는 영원한 습관으로 만들어놓은 후이다.
→ 방종한 성 개념에 대한 투쟁은 역사적 과제에 요구되는 엘리트를 낳는 일을 뜻하거나 적어도 엘리트를 양성하여 그들의 기능이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을 포괄할 정도로 확대될 수 있게끔 하는 일을 뜻한다.
– 미국적 현상이란 역사상 그 전례가 없는 속도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와 인간을 창출하고자 한 지금까지의 가장 거대한 노력이다. 그 목적이란, 노동자 속에 자동적·기계적인 태도를 최대한 조장하고, 노동자 쪽의 지성·상상력·창의력들의 적극적 참여를 일정하게 요구하는 기능적·전문적인 작업의 심리·신체적 연관을 파괴하여 생산적 활동을 오직 기계적·신체적인 측면으로만 환원하는 것. 실제에서 이러한 것들은 새롭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며, 단지 산업주의 자체와 함께 시작되었던 긴 과정의 가장 최근의 국면.
– 포드와 같은 미국 기업가들의 ‘청교도적인’ 노력: 생산적 ‘창조’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노동자의 인간성과 정신성을 파괴한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노동자의 신체적 근육과 신경적 효율성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안정되고 숙련된 노동력은 그들의 이익에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임금은 숙련된 노동력을 선별하고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고임금은 양날의 칼과 같은 무기이다. 곧 고임금의 목적이 실현되자면 노동자들이 남는 돈을 ‘합리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그 돈을 자신의 근육적·신경적 효율성을 유지·갱생, 그리고 가능하면 증대시키는 데 사용해야지 그 효율성을 부식시키고 파괴하는 데 써서는 안 된다는 것.
→ 노동력 파괴의 가장 위험한 주범인 알코올에 대한 투쟁이 국가의 기능이 될 수 있다(기업가들의 사적인 노력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이 입증되거나, 장기적이고 폭넓은 실업 위기의 결과 노동대중 사이에서 심각하고 폭넓은 도덕적 위기가 발생할 경우).
– 알코올 중독 다음으로 성적 기능의 남용과 불규칙성이 신경적 에너지의 가장 위험한 적인데 ‘강박적인’ 작업이 알코올 중독과 성적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포드가 일군의 감독관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고용인들의 사적 생활에 개입하여 그들의 지출 방식과 생활 방식을 통제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이러한 경향들의 한 징표이다.
– 주류의 양조·판매 금지: 술은 사치스런 생산물이 되었으며 아무리 임금이 높다 할지라도 노동대중들의 폭넓은 층이 소비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임금을 얻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술을 찾아 헤매거나 법을 희롱하거나 무시하는 데 시간을 바칠 여유가 없었다. 성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계집질’하고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낳은 여가가 요구된다.
→ 새로운 산업주의는 일부일처제를 원하는 것임에 틀림없으며, 그것은 노동자로서의 인간이 우연한 성적 만족을 위한 무질서하고 자극적인 향락을 위하여 자신의 신경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열에 대한 찬양은 가장 완벽한 자동화와 연결된 생산활동의 규정된 움직임과 화해할 수 없다.
– 일반적으로 이혼은 특히 상층계급들 사이에 잦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노동대중과 지배계급의 갈수록 늘어나는 도덕적 간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미국에서 개척자라는 최근의 ‘전통’: 일에의 소명이 극한의 강도와 힘에 닿은 강력한 개인적 개성의 전통이며 직접적으로든 하인이나 노예를 통해서든 자연의 힘과 정력적으로 부딪쳐 그 힘을 지배하고 성공적으로 이용하고자 한 사람들의 전통이다.
– 유럽의 전통이라는 것은 미국주의에 저항하는 수동적 잔재: 생산과 작업의 새로운 형태가 자신을 무자비하게 쓸어갈 것이라는 본능적 느낌을 가졌기 때문. 미국에서도 사회적 수동성의 영역이 갈수록 더 넓게 창출되는 과정에 있다.
→ 남성 기업가들은 백만장자가 되어도 계속 일을 하는데 그들의 부인과 딸들은 갈수록 더 ‘사치스러운 포유동물’이 되고 있다. 미인경연대회나 여배우 경선(3만 명의 이탈리아 여자들이 1926년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폭스 영화사에 보냈다), 또는 극장들. 이것들은 모두 매춘의 정신적 태도를 조장하였으며 상층계급들 사이에서는 ‘백인 노예화’도 아주 떳떳하게 관행처럼 행해졌다. 여성들은 할 일이 없어서 여행을 한다. 그들은 꾸역꾸역 대양을 건너 유럽에 와서 금주법으로부터 해방되고 잠깐 동안의 ‘결혼’을 계약한다.
→ 진정한 뜻에서는 매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손쉽게 깨뜨릴 수 있는 법적 절차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점차 확대. 상층계급들에 고유한 이러한 현상들로 인하여 노동대중을 새로운 산업의 요구에 순응시키기 위해 강제를 쓴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 속에서 확인되는 철학’이라는 젠틸레의 짧은 정식이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미국주의에서야말로 그 타당성이 발견될 것: 인간과 외적 현실(현실의 문화)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진짜 행위(미국주의)와 자칭 행위이지만 사물이 아니라 말만을 바꿀 뿐이고, 인간의 내면이 아니라 외적인 몸짓만 변화시킬 뿐인, 논객의 경박한 행위 사이의 차이점.
→ 전자는 조용한 속에서도 자신의 객관적 활동에 본질적인 미래를 창조. 후자는 수사학적 술어로 더 그럴싸한 꼭두각시를 만든다. 그 꼭두각시는 살아 있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외부의 끈만 잘라내면 이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만다.
– 테일러주의와 노동자의 기계화: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의 서기, 수동적 인쇄기의 식자공, 자동주조 식자기 조작공, 속기사, 타이피스트, 이러한 직종에서는 다른 어떤 직종에서보다도 기계화에의 적응 과정이 어렵다. 이 직종들에서 직업적인 자격을 갖추려면 자신이 복제하는 문헌의 지적 내용을 ‘잊어버리거나’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요구된다.
→ 식자공은 자신의 손과 눈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며 이것이 그의 기계화를 더욱 쉽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들이 문헌의 때로는 멋있는 지적인 내용으로부터 오직 문자적인 상징만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해야만 하는 노고라는 것은, 아마도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필요한 가장 어려운 요구 조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계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정신적 죽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단 적응 과정만 완료되면 노동자의 두뇌는 화석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벽한 자유 상태에 다다르는 일이 벌어진다. 완벽하게 기계화된 것은 오직 신체적인 동작뿐이다.
→ 노동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작업으로부터 결코 직접적인 만족을 구할 수 없으며 기업가들이 자신을 훈련된 원숭이로 만들려고 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순응주의적인 생각과는 전혀 거리가 먼 여러 가지 생각들에 잠길 수도 있다. 기업가들이 이러한 일들을 우려하였다는 사실은 포드의 책과 필립의 저작 속에서 잘 나타나는, 일련의 조심스런 조치와 ‘교육적’ 노력을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 고임금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미국의 평균적 임금과 비교할 때 포드가 제공하는 임금이 높다는 단지 그런 뜻인가? 아니면 특정의 작업 방식으로 생산에 참여한 포드의 고용인들이 소비한 노동력에 비해 지불된 가격이 높다는 것인가?
→ 포드사의 숙련된 노동력은 매우 불안정하며, 그 결과 포드 노동자들의 ‘합리적인’ 전직률의 평균치를 수립하여 다른 기업체의 평균치와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력의 이러한 불안정성은 포드사의 경우에 관한 한, 노동자들의 구직 경쟁에서의 통상적인 조건들이란(곧 임금의 차이) 단지 제한적으로만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포드사는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다른 기업에서는 아직 요구되지 않은 특질과 자격, 하나의 새로운 형의 자격, 노동력 소비의 새로운 형태들을 요구하므로 평균적인 노동시간은 양적으로 다른 회사와 똑같지만 내용은 훨씬 더 노동자를 피곤하게 하고 고갈시키므로 고임금으로도 충분히 보상될 수 없다는 것.
→ 포드의 방식은 합리적이며 다시 말해서 일반화되어야 할 방식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조건과 생활양식, 그리고 사람들의 관습에 변화가 일어나는 긴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강제만을 통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직 조절된 강제(자기규율)와 설득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설득은 고임금이라는 형태도 취해야 한다. 곧 더 나은 생활수준 또는 더 정확히 말하여, 근육과 신경적 에너지의 일정한 지출을 요구하는 새로운 생산과 작업의 방식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실현할 수 있는 임금이 요구된다.
– 숙련된 노동자의 팀: 생산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는 경우에도 그 구성원들 또는 그들 중의 일부는 해고되지도 않고 독점적인 임금도 계속 받아먹는 경우가 많다. 그토록 힘들여 만들어낸 유기적 전체의 구성 인자들을 흩뜨려 버린다는 것은 비경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그렇다고 하여 아무렇게나 골라낸 새로운 인자들로 그것을 다시 만든다는 것도 노력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이 예비군과 실업자가 규정한 경쟁 법칙에 대한 제한이 되며, 이러한 제한이 언제나 특권적인 노동 귀족이 형성되는 근거였다.
– 모든 기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독특’한 것이며, 따라서 독자의 특수한 요청에 적합한 자격을 지닌 노동력을 형성한다. 이 노동력으로 인하여 실행되는 사소한 손재주·작업비밀·‘손장난’들은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무수히 반복되다 보면 거대한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다.
– 국가가 생산과 교환의 조직을 과거와 마찬가지로 경쟁과 사적 활동의 주도하에 놓아둘 것인가?: 만약 사적인 주식이 가치절하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인플레이션이든 다른 요인 때문이든 자신이 발행한 채권(정부채)의 가치를 저하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사회경제적 조직 전체에 대한 파국이 된다. 따라서 국가는 국가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투자가 제대로 운용되었는가를 점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개입한다. 그러나 통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생산 장치를 지금 이 순간 이대로 계속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인구의 증가와 집단적 필요의 증대에 맞추어 생산 장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재조직해야 한다. 그런데 사적인 활동이 가장 위험에 부딪히는 곳은 바로 이 필요불가결한 생산 장치의 발전이라는 부분에서이며, 따라서 이 분야에서야말로 국가의 개입이 더 한층 크게 요청된다.
– 국가 개입에 대한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그 외 요인들: 점증하는 보호주의와 자급자족적 경향, 투자 프리미엄, 덤핑, 파산 과정에 있거나 파산 위험이 있는 대기업체의 구제 → 손실과 기업적 결손의 국유화.
– 국가가 정치적으로 금권정치주의와 ‘일반 민중’의 두 가지 모두에 동시적으로 기초하여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순된 일이 아닌데, 프랑스의 예를 보면 거기서의 금융자본 지배는 프티 부르주아지와 농민 금리생활자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초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회적 구성을 유지하였는데, 그것은 중소 규모의 농민 재산이라는 방대한 기초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나라들에서는 저축가들이 생산과 노동의 세계로부터 단절되었다. 이러한 나라들에서의 저축은 너무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 기생적인 저축이 국가의 보증 덕택으로 정상적인 시장의 일반적인 위험으로부터도 면제된다면, 한편으로는 기생적인 토지 재산이 더욱 강화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법적으로 일정한 배당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공업의 사채(社債)는 반드시 노동에 대해 더욱더 가혹한 부담을 부과하게 될 것이다.
– 오늘날 미국주의라는 것은, 상당한 정도로, 마지막에 형성될 새로운 질서로 인하여 사실상 분쇄될 것이며 지금도 이미 사회적 공포와 절망과 해체에 사로잡힌 낡은 계층들에서 나오는 섣부른 비판이다. 그것은 재건할 능력은 없으면서도 혁명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측으로부터의 무의식적인 반동의 시도이다. 재건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질서로 인해 ‘폐기처분될’ 사회집단들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노고로 새로운 질서의 물질적 기초를 창출해야 할 부담을 짊어진 사회집단들에게서이다. 오늘날에는 ‘필연’인 것을 ‘자유’로 전화시키기 위해, 미국화되지 않은 독자적인 생활세계를 스스로 ‘찾아야만 할’ 자들은 바로 그 사회집단이다.
→ 새로운 생산방식의 수립에 대한 지적·도덕적 반동과 미국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찬양은 둘 다, 해체되어 가는 낡은 계층들의 잔재에 속하는 것이지 운명적으로 새로운 방식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집단들에 속한 것은 아니다.
– 술집의 생활이나 로터리클럽이 대변하는 식의 이데올로기로서 이해된 미국주의란 단지 미국적인 기후에 맞추어 새로운 외투를 걸친 것에 지나지 않는, 유럽 문명의 유기적인 확장이요 강화일 뿐이다: 미국주의와 ‘유럽주의’의 차이는 정도의 문제이지 질의 문제가 아니다. 베를린에서는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중간계급들이 몰락한 상태였으며 공업의 성격도 파리와는 전혀 달랐다. 프랑스의 중간계급들은 독일의 인플레이션과 같은 우발적 위기도 겪지 않았고, 1929년의 유기적 위기도 독일에서처럼 심하게 겪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으로 인하여, 파리의 미국주의가 천박한 외국의 유행을 좇은 화장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출처: 한국어판, 이상훈 역, 1986(제1판), 2006(제5판), 거름 [영문판 원본: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71; 1978), translated by Quintin Hoare, Geoffrey Nowell Smith]
생각해 볼 문제들>
- 포드주의 도입 전후 미국의 노동조합이 직면했던 문제, 집중했던 과제는 무엇인가? 해당 시기 이탈리아의 노동조합의 요구는 무엇인가?
- 이탈리아에서 조합체적 조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왜 무솔리니 이후 파시즘화된 조합체적 경제가 등장하게 되었나?
- 전시 생활의 강제적 압력으로 젊은 대중의 성적 본능조차 억제되었던 상황이 1차 대전 후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양성간 수적 불균형 속에서 한층 격화된 사정. 성생활과 관련된 심각한 동요가 새로운 노동 작업 방식(테일러주의와 합리화)과 맞물려 낳게 된 새로운 문제들.
- 미국적 현상(포디즘 등)이 추구한 새로운 유형의 노동자와 인간(생산적 활동을 기계적·신체적 측면으로 환원하는 태도)과 이 문제에 노동조합의 대응 방식은 어떤 것이었는지 검토해 보자.
- 포디즘하에서 노동자의 피로도와 고임금의 관계. 숙련된 노동귀족, 실업 예비군 문제.
- 국가 수단을 통한 채권(정부채) 투자 운용을 점검하기 위해, 단순한 통제만이 아니라 인구 증가와 집단적 필요의 증대에 맞추어 생산 장치를 발전시키기 위해 재조직해야 할 때 국가의 개입이 한층 요청된다. 국가가 생산과 교환의 조직을 그저 사적 활동의 주도하에 놓아둘 수 없다는 문제.
- 유럽의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 금융자본의 지배는 프티 부르주아지와 농민 금리생활자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초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점. 중소 규모의 농민 재산이라는 방대한 기초가 존재하였다는 점.
- 유럽의 낡은 계층(기생적 금권정치 세력)이 아닌, 미국주의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에 맞서 ‘필연’에서 ‘자유’로 전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집단(생산 계층). 이 사회집단에게 주어진 미국화되지 않은 독자적인 생활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