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한 문제들>
– 정당의 발전을 분석할 때에는 정당에 소속된 사회집단, 정당의 대중적 당원, 정당의 관료와 참모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중 관료제는 가장 위험한, 소심하고도 보수적인 세력이다. 만약 관료제가 스스로 꽉 짜인 기구로 성립하여 혼자 힘으로 서고 스스로를 당원 대중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서 느낀다면, 그 당은 시대착오적일 것이며 첨예한 위기의 순간이 닥칠 때 사회적 내용을 상실한 채 허공에 매달린 꼴이 될 것이다. 히틀러주의가 팽창한 결과 독일의 많은 정당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를 생각해보라. 프랑스 정당들은 모두 박제화되었고 시대착오적이다. 그들은 과거 프랑스사의 여러 단계에서 나왔던 역사·정치적 문서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를 지금도 계속 되풀이하였다. 그들의 위기는 독일의 정당들이 맞았던 위기보다 한층 더 파국적일지도 모른다.
– 어떤 국가에 경제적 생활과 정치적 자기 주장(권력에의 효율적 참여)을 하는 데에서 민간 부문에서건 군사 부문에서건 관료적 경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폭넓은 사회계층이 존재하는가?
→ 근대 유럽에서는 중소 농촌 부르주아지. 이 계층의 크기는 공업력의 발전 정도와 농지 개혁 유무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다. 관료적 경력은 이 계층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과 그 기능이 산출·고무하는 심리적 경향과 특히 잘 어울린다.
→ 이 계층이 소득을 얻는 것은 그들이 법적으로 국가 토지의 일부에 대한 소유자이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의 기능은 농민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에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데 있다. 농민의 상대적 지위가 높아지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파국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농민의 만성적인 빈곤과 긴 노동시간, 거기서 비롯되는 퇴화는 이 계층의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농민 노동의 자발적 조직을 위한 최소한의 시도가 있다거나 관제적 종교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어떠한 농민 문화운동이 있다거나 할 때 언제나 이 계층이 극력 저지하고 반격을 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프랑스의 군사적 집단과 농민의 기능을 연구하지 않고는 12월 2일의 쿠데타를 이해할 수 없을 것.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드레퓌스 사건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사건이 ‘카이사리즘’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인 까닭이다. 곧 그것이 잉태되었던 분명히 반동적 성격을 띤 카이사리즘을 등장하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다. 지배적인 사회 블록의 요소들은 농민과 농촌의 지지가 아니라 개량적 사회주의자들의 지도하에 있는 도시의 종속적 계층에 의존했다. 드레퓌스 형의 현대적인 역사·정치적인 운동은 그 외에도 또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분명 혁명적이지는 않지만 반동적이지도 않다. 반동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지배적인 진영의 답답하고 경화된 국가 구조도 함께 깨뜨리며 이전보다 다양하고도 더 많은 인자들을 국민적 생활과 사회적 활동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뜻에서이다. 그러한 세력들이 역사적으로 유효한 것은 자신의 내재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세력들의 적의 무능력으로 인한 것이다.
– 계급들은 정당을 산출하고 정당들은 국가와 정부의 요인(要人)과 시민사회·정치사회의 지도자들을 형성시킨다. 이처럼 정당이라는 표현체와 기능 사이에는 유용하고도 결실 있는 관계가 있어야 한다. 정당의 이론적·교의적 활동 없이는, 다시 말하여 대표되는 계급의 속성을 규제하는 여러 원인들과 그 계급이 발전해온 경로에 대한 탐색과 연구를 위한 체계적 노력 없이는 지도자들의 형성이란 있을 수 없다. 이탈리아에는 그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국가와 정부의 요인은 부족하고 의회의 형태도 지저분하며, 없어서는 안 될 소수 인물들에 대한 매수와 흡수를 통하여 정당들이 해체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 로자 룩셈부르크의 «총파업─당과 노동조합»: 기동전을 정치학과 연관시켜 이론화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이다. 로자는 다소 성급하고 또 피상적으로 1905년의 역사적 경험을 이론화하면서, 사실상 ‘주의(主意)적’이고 조직적인 요소들을─어떤 ‘경제주의적’이고 자생성론적 편견 때문에─무시해 버렸지만, 그 요소들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폭넓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견고한 경제적 결정론의 한 형태: 공황은 적의 방어망에 돌파구를 뚫어놓는 야포로 여겨진다. 이는 경제적 요인이 시공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작용하는 것으로 파악한 점에서 더욱 악화한 결정론이다. 역사적 신비주의. 일종의 기적적인 빛에 대한 기대.
– 가장 발전된 나라들의 경우에는 ‘시민사회’가 직접적인 경제적 요소(공황·불황)의 파국적 ‘기습’에 저항할 수 있는 복합적 구조로 성장하였다. 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는 근대적 전쟁에서의 참호체계와 같다. 전쟁에서는, 격렬한 포격으로 적의 모든 방어체계가 파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지 외곽 주변만이 파괴된 것에 지나지 않아, 아군 돌격병들이 공격할 때 여전히 유효한 적의 방어선에서 저지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는 한다. 똑같은 일이 극심한 경제공황 중의 정치에서도 일어난다. 공황이 공격 세력에게 시공적으로 전광석화처럼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며 하물며 전투 정신을 부여할 수는 더욱 없다. 마찬가지로 방어자의 사기 또한 떨어지지 않고, 비록 폐허라 할지라도 자신의 위치를 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힘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잃지 않는다.
–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이었고 시민사회는 아직 원시적이고 무정형한 것이었지만, 서구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고, 국가가 동요할 때에는 당장에 시민사회의 견고한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과 이론은 또한 프랑스 생디칼리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또한 부분적으로는 자생성이론에 의거한다.
– 역사 발전은, 평화적이면서도 연대적인 노동 분업의 계획에 따른 건설을 지향하는 세력들(곧 사회주의 세력들)에게 주도권이 결정적으로 이양되기 전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진행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1870년 이후 유럽이 식민지적인 팽창으로 나선 이래, 국가의 국내적·국제적인 조직적 관계들은 한층 더 복합적·대량적인 것이 되며, ‘영구혁명’이라는 공식은 ‘시민적 헤게모니’라는 정식 속으로 극복된다. 국가 조직과 시민사회의 여러 단체들의 복합체에서 모두 볼 수 있는 현대 민주주의의 대량적 구조들은, 말하자면 정치기술상 진지전의 전선에 설치된 ‘참호’와 항구적인 요새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전쟁의 ‘모든 것’이었던 기동전의 요소는 이제 단지 ‘부분적’인 것이 된다.
– 권력의 분화 속에서 국가의 통일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의회는 시민사회와 더 긴밀히 연결되었으며, 사법권은 의회와 정부 사이에 위치하면서 성문법의 연속성을 대변한다(정부와 대립하면서까지도). 당연한 것이지만 세 가지 권력은 모두 정치적 헤게모니의 기관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서로 달라서 입법, 사법, 행정의 순서이다. 사법 집행에서의 타락은, 공중에 대하여 치명적으로 나쁜 인상을 미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하는데, 헤게모니 장치는 이 분야에서 특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경찰과 정치행정에서의 자의적인 행동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마키아벨리의 저술에서 쓰인 ‘군주’라는 개념은, 한 국가를 정복하고자 한다든가 아니면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 지도자라는 의미에서라면, 현대의 정치언어로 번역하고자 할 때 ‘정치정당’이 될 것이다. 정치정당은 전통적인 헌법에 따르자면 법적으로 군림하지도 않고 통치하지도 않지만, 정치정당은 ‘사실상의 권력’을 지녔고 헤게모니적인 기능을 행사하며 ‘시민사회’ 속의 이해들 간의 갈등을 균형짓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사실상 정치사회와 깊이 얽혀서 모든 시민들은 오히려 정당이 군림도 하고 통치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끊임없이 운동하는 이러한 현실에 입각할 때 전통적인 형태의 헌법을 창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오직 가능한 것은, 국가목표는 바로 자신의 종식과 소멸이라는, 다시 말하여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 재흡수한다는 원칙의 체계를 창출하는 일이다.
– 현대적 의미의 조합주의(coporativism): 현대적 의미의 ‘조합(coporation)’은 과거의 경우처럼 폐쇄적·배타적인 경계를 지닐 수 없다. 이 주제를 논하는 데에서 그 논의가 ‘절대주의적’ 조류를 지지하는 인상을 주는 일이 절대로 없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 현상의 ‘일시적’ 성격을 강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의할 점이 있다. 곧 ‘한 시대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흔히 짧은 ‘시간적’ 지속과 혼동되었는데, 상대적으로 긴 시간은 ‘지속’하면서도 ‘한 시대를 이루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권은 예상보다 훨씬 더 질긴 힘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특히 그 정권이 상대방의 허약성의─조장된 것일 수도 있다─결과로 ‘강할’ 때 그러하다.
→ 그람시는 파시즘 제도가 ‘시대를 가르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파시즘 제도의 그 이전의 부르조아 제도에 견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격에 대해 지적. 또 그러한 판단을 내릴 때에는 조금이라도 ‘절대주의적’ 경향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배제해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상이 일시적인 성격의 것임을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계급국가라는 개념과 ‘조절된(regulated) 사회’라는 개념 사이의 혼동: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조합경제(coporate economy)’ 이론가인 스피리토와 볼피첼리는 조합주의가 탈자본주의(post-capitalist) 경제를 대표하는 것이며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무정부성을 폐기할 것이라고 주장. 그람시는 ‘조절된(regulated)’ 사회가 자본주의─곧 계급국가─와 공존할 수 있다는 생각 속에 들어 있는 혼동을 지적. 그람시는 ‘조절된 사회’를 공산주의를 뜻하는 말로 쓴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회가 생산수단을 장악함에 따라 상품 생산은 폐지되며 그와 동시에 생산자에 대한 생산물의 지배도 없어진다. 사회적 생산에서의 무정부는 체계적이고 명확한 조직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나 그람시는 사실상의 질서와 조화는 오직 공산주의하에서만 가능하며 그때까지는 계급국가가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조절된’ 사회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 현실에서 윤리적 국가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의 종식과 자기 자신의 계급의 종식을 이룩하여야 할 목표로서 선정하는 사회집단─곧 피치자의 내부적 분업을 끝내고 기술적·도덕적으로 단일한 사회적 유기체를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집단─뿐이다.
– 다니엘 알레비(Danièl Hlévy)의 «자유의 쇠퇴(Décadence de la liberté)»에 대한 그람시의 논평: 알레비가 보기에 ‘국가’란 대의제적 장치인데, 187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은 보통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적 유기체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적인 유기체들(자본주의 기업들, 참모부들)이나 또는 나라 전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시민 봉사자들이 주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그러한 발견이야말로 바로 ‘국가’란 단지 정부의 장치일 뿐만 아니라 ‘사적인’ ‘헤게모니’ 장치, 또는 시민사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우파의 행정권 강화를 요구하는 독재적 이데올로기 조류가 생겨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알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그 또한 독재적 이데올로기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가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전력을 보건대(소렐과 프랑스 파시즘 운동에 참여한 모라에 대한 동정) 전혀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다.
– 윤리적 국가라는 개념은 철학적·지적 뿌리는 지녔는데(지식인들: 헤겔) 사실상 야경꾼 국가라는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이 개념은 중세적 잔재로서의 세계시민주의와 종교적·성직자적 조직의 간섭과 대립하는, 세속국가의 자율적·교육적·도덕적인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입주의적 국가라는 개념은 경제적 뿌리를 지녔는데, 한편으로는 보호주의와 경제적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경향과 연결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주적·봉건적인 출신의 국가적 인물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과잉으로부터 노동계급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게끔 하는(비스마르크와 디즈레일리의 정책) 노력과 연결된다.
– 자유주의자들(‘경제학자들’)은 ‘야경꾼으로서의 국가’를 지지하며 역사적 주도권이 시민사회와 시민사회에서 떠오르는 세력들에게 맡겨지기를 원하고 국가는 다만 ‘공정한 경기’와 경기의 규칙에 대한 감시자이기를 바란다.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자유주의자일 때와 개입주의자일 때 매우 중요한 차이를 둔다(그들은 경제 분야에서는 자유주의자이면서 문화 분야에서는 개입주의자일 수 있다). 가톨릭은 국가가 자신의 기호에 100퍼센트 동조하는 개입주의적 국가이기를 원하며, 여의치 못하거나 자신이 소수파일 때는 ‘중립적’ 국가, 다시 말하여 자신의 적을 지원하지 않을 국가를 요구한다.
– 자유주의 국가를 ‘야경꾼’이라고 표현한 것은 라쌀(Lassalle), 곧 독단적·비변증법적인 국가주의자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라쌀의 견해를 마르크스주의와 견주면서 자세히 살펴보라). 조절된 사회로서의 국가라는 입장에서는, ‘국가’와 ‘지배’가 똑같은 국면과 ‘국가’와 ‘시민사회’가 동일시되는 국면에서부터 야경꾼으로서의 국가라는 국면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야경꾼으로서의 국가란, 조절된 사회의 요소가 지속적으로 확산·발전될 수 있도록 보호하며, 따라서 점차로 자기 자신의 권위주의적·강제적인 개입을 축소시켜 나가는 강제적 조직을 말한다. 이것은 새로운 유기적 자유시대의 개막이 임박함을 알리는 것이기는 해도, 새로운 ‘자유주의’ 사상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 어떤 유형의 국가도 경제적·조합주의적 미숙성을 통과하지 않을 수 없다면, 새로운 유형의 국가를 건설한 새로운 사회집단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내용은 주로 경제적 질서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추론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내용에서 상부구조적 요소들은 불가피하게 수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으며, 그 요소들도 예측과 투쟁의 성격을 지닐 뿐 아직은 ‘계획된’ 요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문화 정책은 두드러지게 부정적일 것이고 과거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될 것인데, 그 목표는 기억에서 지우는 것, 파괴하는 것에 두어질 것이다. 문화 정책에서의 건설의 방침은 아직 ‘개략적인’ 윤곽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구조와 일치시키기 위해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변해야 할 것이다.
→ 중세 코뮌 시대에는 이러한 것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것은 교회의 직능으로 남았던 문화가 성격상 반경제적(곧 발흥하는 자본주의적 경제에 대립하는)이었기 때문이다. 문화가 새로운 계급에게 헤게모니를 주는 쪽으로 향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계급이 헤게모니를 잡는 것을 방해하는 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따라서 인문주의와 르네상스는 반동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새로운 계급의 패배, 새로운 계급에 고유한 경제세계의 부정을 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자율적인 국가생활로 떠오른 사회집단이 이전에 독립적으로 독자적인 문화적·도덕적 발전을 수행한 기간이 길지 않을 경우(그렇게 된 것은 중세적 사회와 절대적 제도 속의 특권적인 자원과 신분의 법적 존재 때문이었다)에는, 국가숭배의 시기가 불가피하며 실로 적합한 것이기도 하다. 이때 ‘국가숭배’는 ‘국가생활’의 정상적인 형태와 다름없으며, 또는 적어도 자율적인 국가생활과 ‘시민사회’의 창출을 위한 입문이다. 독립적인 국가생활로 떠오르기 전에는 시민사회의 창출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숭배’가 그대로 방치된다거나 특히 이론적 광신주의가 된다든가, 또는 ‘영속성’인 것으로 여긴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새로운 국가생활의 형태, 곧 ‘관료에 의한 지배’가 없어도 개인들과 집단들의 활동이 스스로 ‘국가’적인 성격을 지닐 형태를 발전시키고 산출하기 위해서(다시 말하여 국가생활이 ‘자발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야말로 국가숭배는 끊임없이 비판되어야 한다.
– 자율적인 세력으로 파악되는 국가=정부가 그것이 기초하는 계급에게 위신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이론적·실천적으로 대단히 큰 중요성을 지닌다.
→ 그것은 엘리트 또는 전위, 다시 말하여 한 정당이 자신이 대표하는 계급과의 관계에서 수행하는 기능 속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 같다. 이 계급은 흔히, 하나의 경제적 사실(모든 계급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사실이다)로서는, 지적·도덕적 위신을 누리지 못할 수 있다. 곧 자신의 헤게모니를 수립할 국가를 세울 능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 때문에 현대에서조차 군주들의 기능이 요구된다. 같은 까닭으로 국가로 조직된 부르주아지의 지도적 인물들이 구봉건계급들의 인자들로 구성될 수 있다는 현상이 나타난다(특히 영국과 독일).
– 이탈리아 민중의 이른바 ‘국제주의’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현상과 결부된, 일종의 모호한 ‘세계시민주의’이다. 그 현상이란 가톨릭적인 중세의 세계시민주의와 보편주의로서 이탈리아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탈리아 자신의 ‘정치적·국민적인 역사’가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이것은 근대적인 뜻의 국민 또는 국가의식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이탈리아는 1300~1700년의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적 전통을 지녔으며 지금도 유지된다. 그러나 인문주의나 르네상스가 주장하듯이 그 전통이 고전 고대의 시대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통일이 리소르지멘토와 국민적 통일의 기초였으며 또 바로 그러한 점이 국민적 통일의 약점이었다. 문화적 전통은 인구 중의 가장 적극적이고 지적인 계층을 부르주아지의 주변으로 결집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아직도 대중의 국민주의의 저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심성에는 정치·군사적 또는 정치·경제적 요소, 곧 프랑스·독일·미국의 국민주의적 심리의 기초가 되는 요소가 부족하여서 그 결과 많은 ‘반체제자들’과 ‘국제주의자들’이 ‘국수주의자’이면서도 아무런 모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문화적 국수주의가 흔히 보여주는 독성의 이해: 이탈리아에서는 과학적·예술적·문화적 개화가 정치적·군사적·국가적 쇠퇴의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관련 있다.
–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는 것, 더 이상 지도적이지 못하고 단지 ‘지배적’·강제적인 힘만을 쓴다는 것은, 거대한 대중이 자신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멀어져 이전에 믿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전후에 나타난 일반대중과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균열은 단지 강제를 통하여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대두되는 것을 막는다고 해서 ‘치유’될 수 있을 정도의 것인가? 위기에 대한 역사적으로 정상적인 해결책이 이런 식으로 막혀버린 공백 기간은 반드시 낡은 것의 복고에 유리한 쪽으로 귀결될 것인가? 이데올로기의 성격상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억압은 장기적으로는 폭넓은 회의적인 분위기를 불러올 것이므로 새로운 ‘타협책’이 추구될 것이다─그 타협책 중에는 예컨대 가톨릭주의가 또 한 번 단지 예수회주의가 된다든가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낡은 이데올로기의 죽음은 모든 이론과 모든 일반적 정식에 대한 회의주의의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 또한 그것은 순수한 경제적 사실(수입들)로의 치우침, 그리고 사실상 전혀 현실적이지 않으며(모든 경우에서), 그 표현에서도 단번에 냉소적임을 알 수 있는 정치학으로의 치우침이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난다(무솔리니가 쓴 «마키아벨리의 전주곡»: 노예제도를 정치경제의 근대적인 수단이라고 찬양함. 아마도 랜시(Rensi) 교수의 영향을 받고 쓰여진 것 같았다).
→ 그러나 이러한 정치학과 경제학으로의 환원은, 바로 최상층부의 상부구조가 구조 자체에 더 긴밀히 부착된 수준으로 환원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 곧 새로운 문화의 창출을 위한 가능성과 필연성을 뜻하는 것이다.
출처: 한국어판, 이상훈 역, 1986(제1판), 2006(제5판), 거름 [영문판 원본: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71; 1978), translated by Quintin Hoare, Geoffrey Nowell Smith]
생각해 볼 문제들>
1. 히틀러주의 팽창이 당시 독일의 많은 정당에 미친 영향
2. 근대 유럽의 중소 농촌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기능: 농민과 맺었던 부정적, 긍정적 관계
3.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연구 검토의 필요성. 드레퓌스 형의 현대적인 역사·정치적인 운동들 사례.
4. 정당이 자신이 대표하는 계급의 발전 경로에 대한 체계적 탐색과 연구를 못하는 경우는 어떤 때이며 왜 그러한가?
5. 로자 룩셈부르크: 공황의 파국, 경제적 결정론, 자생성론은 왜 주의(主意)적이고 조직적인 요소를 무시하게 되었나?
6. 전통적 형태의 헌법을 창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오직 가능한 것은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 재흡수한다는 원칙의 체계를 창출하는 일이라는 그람시의 주장.
7. 현대적 의미의 조합주의와 이탈리아 파시즘과의 관계: 그람시는 파시즘이 일시적인 성격의 것이고 그 이전의 부르주아 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격을 갖지만, 그 문제를 논하면서 ‘절대주의적’ 조류를 지지하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 이러한 주장을 검토해 보자. 또한 조절된 사회와 자본주의(계급국가)는 공존할 수 없고 오로지 공산주의에서만 가능하다는 견해에 대해 검토.
8. 윤리적 국가를 창출할 수 있는 사회집단은 국가와 자신의 계급의 종식을 목표로서 선정하는 집단: 윤리적 국가 개념에 대한 검토 필요성.
9. 라쌀의 국가 개념과 마르크스의 국가 개념
10. 경제 분야에서는 자유주의자이며 문화 분야에서는 개입주의자인 지식인들: 정당의 역할과 관련하여 검토해 보자.
11. 엘리트, 전위, 즉 정당이 자신이 대표하는 계급과의 관계에서 수행하는 기능: 경제적 사실로서는 지적·도덕적 위신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영국과 독일의 사례).
12. 국가생활이 ‘자발적인’ 것이 되기 위해 ‘국가숭배’는 끊임없이 비판되어야 한다는 주장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