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수고] 1권, <제1장 현대의 군주>

발췌한 문제들>

1. 마키아벨리, 이탈리아, 자코뱅주의

– 그람시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는 현대에는 정치정당이라고 보았다. 그는 새로운 국가 또는 새로운 국민적·사회적 구조의 건설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중심 문제라고 파악했다. 혁명적 생디칼리즘의 이론가이자 «폭력론»(1906)의 저자인 조르주 소렐에게 최고 형태는 총파업이었으나, 이는 적극적·건설적인 국면을 제시하지 못하며 실천 속에서의 건설과 긍정, 곧 정치적인 당 강령으로서의 건설과는 거리가 있는 파괴와 부정에 그친다고 보았다.

– 현대의 군주론은 그 일부를 자코뱅주의에 할애해야 한다: 자코뱅주의는 집단의지가 적어도 어떤 점에서는 독자적이며 전적으로 새롭게 작동된 예이다. 집단의지와 정치적 의지는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능동적 자각으로서의 의지이며, 역사적 드라마에서 사실적이고도 유능한 주인공으로서의 의지.

– 이탈리아에서는 효율적 자코뱅 세력이 부족했다: 반대 세력은 토지 귀족이었다. 긍정적인 부분은 공업 분야의 적절한 발전과 일정 수준의 역사·정치적 문화를 습득한 도시 사회집단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거대한 농민 대중이 이들과 동시에 정치생활로 분출되어 들어오지 않으면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의 형성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마키아벨리는 국민군 개혁을 통해 이런 집단의지의 형성을 도모했다는 점에서 조숙한 자코뱅주의자. 1815년 이후 전통적 계급들은 이런 유의 집단의지의 형성을 저지하고 수동적 균형의 국제적 체제 속에서 자신들의 ‘경제적·조합주의적’ 권력을 유지했다.

– 지적·도덕적 개혁: 실천철학은 폭넓은 대중운동을 통해 종교개혁과 비슷한 역사 과정을 대변했으며,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가 현대 문명의 보다 우월하고 전체적인 형태를 실현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갈 지형을 창출했다. 지적·도덕적 개혁은 경제적 개혁의 강령과 연결되어야 한다. 경제적 개혁의 강령이야말로 모든 지적·도덕적 개혁이 표현되는 구체적 형태이다. 현대의 군주는 자신이 발전함에 따라 지적·도덕적 관계의 모든 체계를 혁명화한다.

– 마키아벨리는 행동하는 사람, 행동을 촉구하는 사람, 정당 선언의 스타일이었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고, 바로 그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키고자 했다. 지도자의 행동이 당시 일반화된 이데올로기(종교)와 갈등하거나 또는 갈등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지도자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통일이 깨어지기 전에는 새로운 세력들이 자신의 독립적인 성격에 대한 의식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와 실천철학(마르크스주의)은 공통점을 갖는다.

2.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정치학

– 사회관계들의 체계 속에서, 형이상학적 뜻에서가 아니라 역사적 뜻에서 본 ‘기술’·‘노동’·‘계급’ 들의 요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람시는 크로체의 입장에 대하여 비판: 크로체는 논쟁적인 목적으로 구조를 ‘숨겨진 신(神)’, ‘본체(noumeno)’라고 놓고 그와 견주어 상부구조를 ‘외양(appearance)’라고 놓는다. 그리고 정열(passion)=직접적 이해관계를 말하면서 사회집단의 정열은 철학적 오류를 규정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데올로기와 관련된다. 즉 ‘이기주의(직접적 오류)-이데올로기-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모두에 공통된 ‘오류’이다.

– 실천철학(마르크스주의)에서는 상부구조 중의 한 특수한 수준으로서 정치적 활동(그에 대항하는 학문: 정치학)의 변증법적 위치 수립이 문제가 된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자연과학의 엄밀성을 가지고 규정할 수 있는, 생산의 경제적 조건의 물질적 변화와 법·정치·종교·미학·철학들, 한마디로 사람들이 그 속에서 이러한 갈등(곧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과 기존의 생산관계 사이의 갈등)을 인식하고 또 그에 맞서 싸워 나가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는 언제나 구별되어야 한다.”

– 크로체의 정치=정열 개념은 정당을 배제한다. 조직된 영속적인 정열은 생각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영속적인 정열은 격렬한 흥분과 경련 상태요 작동 불능성을 뜻한다. 따라서 정당을 배제하며 작성된 모든 행동 계획을 배제한다.

– 크로체의 정치의 계기로서의 정열은 영속적인 정치적 구성체(정당, 국민군, 총참모부 등)를 해명하고 합리화하는 데서 난관에 부딪힌다. 정열이 합리성과 신중한 사고, 따라서 더 이상 정열이 아닌 어떤 것이 되지 않고서도 영속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해결책은 정치를 경제와 동일화하는 데서만 발견될 수 있을 것(영속적 행동). 정치적 정열은 ‘영속적·유기적인’ 경제생활의 지반 위에서 생기면서도 그 지반을 초월하여 작열하는 듯한 정서와 열망을 가동시킨다.

– 마키아벨리가 연구한 이탈리아에는 프랑스 삼부회처럼 국민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로 발전된 대의제가 없었다. 의회제도 폐지를 정당화하려는 파시스트 대변자들은 이탈리아 의회제도를 해외로부터 수입된 것이라고 주장. 그러나 이는 1500년부터 1700년에 이르는 이탈리아 정치사회사의 정체와 후진성의 조건을 반영하는 편파적인 주장이다. 의회제도는 민족해방의 과정과 근대적인(독립적이고도 국민적인) 영토적 국가로의 이행에 형식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대의제가 존재했으나 제3신분이 거의 발달되지 않아서 의회는 군주의 혁신적인 시도에 대항하여 지방귀족의 무정부를 지탱하는 도구가 되었다.

– 프랑스의 자코뱅주의는 농민적 소유의 경제적·사회적 중요성을 주장한 중농주의 문화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했다. 마키아벨리는 도시를 농촌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강령과 의견을 군사적인 용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해할 만하다.

3. 정치의 요소, 정치정당

–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분할은 일정한 원칙을 확정하여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가장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고 가장 용서할 수 없으며 가장 교정하기 힘든 결함이 드러나는 영역이다. 집단적인 (정치적) 재난은 대부분 불필요한 희생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행해지지 않은 데에서, 다른 사람의 희생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생명으로 도박을 한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

– ‘국가정신’(헤겔의 용어)은 과거와의 또는 전통과의, 아니면 미래와의 ‘연속성’을 전제: 모든 행동이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복합적인 과정의 한 계기. 이러한 과정에 대한 책임,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적극적이며 언제나 준비되었다고 느끼는 세력들과 연대하였다는 책임이야말로 어떠한 뜻에서 ‘국가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지속(duration)’에 대한 자각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행동을 위한 행동’, 투쟁을 위한 투쟁, 소박하고 소아적인 개인주의는 일시적 기분에 대한 자의적인 충족일 뿐이다. 개인주의는 단지 야만적인 비정치주의. 분파주의도 ‘국가정신’의 기본 요소인 정당정신이 부족한 개인 추종의 한 형태이다. 정당정신이 ‘국가정신’의 기본 요소라는 표명은 우리가 견지해야 할 결정적으로 중요한 주장들 중의 하나이다.

– 직접적인 정치적 행동으로서의 정당이라는 관념을 부정하는 두 유형의 정당

i) 엘리트 문화인들로 이루어진 정당
하나의 똑같은 유기적 정당의 조각들인 서로 연관된 정당들의 거대한 운동에 대해 문화적이고 일반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의 지도(指導)를 제공. 보다 직접적인 여러 집단체들보다 더 우월한 일반 이념으로서의 정당(크로체). 1876년 이후 이탈리아 자유주의 정당은 자신을 ‘개방된 체제’ 속에 있는 수많은 전국적·지역적 분파와 집단들로서 제시했다. 추종자들은 모두 정치적 자유주의 분파들(인민당의 자유주의적 가톨릭주의, 민족주의, 왕당파 노동조합, 공화당, 사회주의의 큰 부분, 민주적 급진파, 보수주의자들: 크로체는 이 모든 집단들·소집단들·패거리·마피아들이 공통으로 지닌 것에 대한 이론가이다. 중추적 선전 업무의 우두머리, 낡은 정치 형태를 갱생시키기 위해 일어난 문화운동의 국민적 지도자).

ii) 엘리트가 아닌 대중으로 구성된 정당
이때의 대중은 자체로서는 가시적 또는 불가시적인 정치적 중심에 대한 군대적 성격의 막연한 충성심 이외의 다른 정치적 기능을 지니지 않는다. 여기서 가시적 중심은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고 단지 대리인이나 ‘대리 이데올로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작용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지휘 메커니즘인 경우가 많다: 파시즘을 의미. 추종하는 대중은 ‘책략’의 대상일 뿐이다.

– 정당이 존재하기 위한 세 가지 기본적인 요소들

i) 일반적·평균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적인 요소: 충성과 규율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들을 집중시키고 조직하며 훈련시키는 누군가가 있는 한에서만 세력이 된다.

ii) 중요한 응집적 요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세력들의 복합체를 전국적으로 집중시켜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만든다. 일정한 노선, 전망, 전제에 따른 일정한 방향의 혁신의 힘을 지닌다.

iii) 중간적인 요소: 첫 번째 요소와 두 번째 요소를 연결시키고 두 가지 사이의 접촉을 도덕적·지적으로 유지시킨다. 세 요소 사이에 ‘고정된 비율’이 실현되었을 때 정당의 효율성은 가장 커진다. 두 번째 요소는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였을 때 나타나고 다른 두 개의 요소가 형성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당을 깨뜨릴 수 없는 때이다.

– 모든 정치정당들은 특정한 정치적·법적 질서를 지키는 기능(치안유지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지위를 박탈당한 반동적 세력들을 법의 울타리 속에 가둬두고자 할 때, 그리고 뒤처진 대중을 새로운 법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할 때 그 기능은 진보적이다. 역사의 생명력을 억제하고 이미 지양된 반역사적인,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이 된 법을 계속 유지하고자 할 때 그 기능은 반동적인 것이다.

– 정당이 진보적일 때에는 그 기능은 ‘민주적’으로 기능(민주적 집중제). 반동적일 때에는 ‘관료주의적으로’ 기능. 후자의 정당은 생각하지 않는 집행관, 기술적인 치안유지 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 대기업가들은 세력들 간의 확실한 균형에 관심을 둔다. 이번에는 이 정당, 다음에는 저 정당 하는 식으로 번갈아 어느 하나를 강화시킴으로써 이러한 균형을 얻는다. 전쟁의 기간 같은 긴급하고 중요한 때에는 대기업가들의 정당은 지주들의 정당이다. 영국에서는 보수당(지주들의 영속적 정당)이 전통적으로 기업가들의 정당이라 여긴 자유당을 흡수하였다. 지주들이 기업가들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더 조직되어 있고, 기업가들보다 더 많은 지식인을 흡수하였으며, 그들의 지도가 기업가들의 지도보다 더 지속적이다.

4. 세계에 대한 개념과 실천적 자세, 경제주의

– 정당을 세우는 데에서는 스스로 통일된(monolithic) 성격을 지니게끔 할 필요가 있으며, 그리하여 지도부와 사병, 지도자와 추종하는 대중 사이에 동질성이 확보되게끔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떠한 실제의 운동도 단번에 자신의 전체적 성격을 자각할 수는 없으며 오직 경험을 통해 점차로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자연적(비관습적인 뜻에서)이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조건들이 없어지면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울 때 자신의 전체적인 성격을 자각한다는 것이다.

– 자유교역운동 사상의 이론적 오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구별에 기초. 양자가 마치 단일한 유기체인 양 제시. 경제적 활동은 시민사회에 속하는 것이고 국가는 경제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 그러나 현실에서 시민사회와 국가는 일체요 똑같은 것이므로 ‘자유방임’ 또한 법적·강제적 수단을 통해 도입·유지되는 국가 ‘규제’의 한 형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유방임 자유주의는 하나의 정치적 강령이며, 국가의 지도적 인물을 바꾸고─그것이 승리할 때─국가 자체의 경제적 강령─다시 말해 국민소득의 분배─을 변화시키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 이론적 생디칼리즘 운동은 하위집단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대변하였다고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지배계급의 지적 헤게모니에 희생당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론적 생디칼리즘은 단지 자유방임 자유주의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으며 실천철학으로부터 몇 가지 불구화된(진부화된) 테제를 빌려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

– 경제주의에 대한 연구와 구조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참고점: «철학의 빈곤»에서는 사회계급의 발전에서 중요한 단계는 노동조합의 개개 구성원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만 싸우지 않고 조직 자체의 방어나 발전을 위해 싸우는 단계라고 되어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인간이 경제세계에서 갈등을 의식하는 것은 이념의 수준에서이다.

– 엥겔스가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전체의 역사와 모든 정치적·철학적 지혜를 몇 개의 공식으로 압축시켜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인간은 기본적 갈등을 이념의 수준에서 의식한다는 논지가, 심리학적·도덕적 성격의 주장이 아니라 구조적·인식론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은 정치를, 역사도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속임수 거래, 마술과 손재주의 경쟁이라고 여기는 습관을 만든다. 그래서 ‘비판적’ 활동은 사기협잡의 폭로, 추문의 유포, 저명인사의 호주머니 엿보기로 격하된다.

– 경제주의에 대한 공격은 역사 기술의 이론에서만이 아니라 특히 정치의 이론과 실천에서도 수행되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의 투쟁은 헤게모니 개념의 전개로 인해 수행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수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은 실제, 정치정당의 이론의 전개(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정당들의 실제의 역사 속에서 수행되어 왔다: 영구혁명론에 대한 투쟁─이 이론에 대신하여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개념이 제시되었다─과, 입헌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의 정도를 생각해 보라.

–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불랑제주의 운동, 드레퓌스 재판, 또는 12월 2일의 쿠데타와 같은 주제에 대한 고전적 저작. 이러한 저작을 연구하여 한편의 직접적·경제적인 요인과 다른 한편의 ‘이념들’에 대한 구체적 연구에 대하여 각각 어느 만큼 상대적 중요성이 부여되었는가 고려할 수도 있다.

5. 상황 분석과 세력관계

– 특정 시기의 역사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을 정당하게 분석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가 정확하 제시·해결되어야 한다:
① 어떠한 사회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조건이 생성되어 발전하기 시작하지 않는 과제를 스스로 제기하는 일이 없다.
② 어떠한 사회도, 그 사회의 내부적 관계 속에 잠재된 모든 생존 형식들을 먼저 다 발전시키기 전에는 붕괴되지 않고 다른 것으로 교체되지도 않는다.
→ “사물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과제는 그것이 해결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형성 과정에 있을 때에만 제기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 유기적인 것과 국면적인 것 사이의 관계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역사·정치적 분석의 오류: 과거사의 재구성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구성이 당면 과제가 된 정치의 기술에서는 한층 더 심각. 저급하고 조급한 욕구와 정열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분석을 가로막는다.
→ 이 기준을 1789~1871년까지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여러 사건들에 적용하면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시기를 전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789년의 모든 맹아가 역사적으로 완전히 소진되었던 것은 코뮌의 기도가 있었던 1870~1871년이 되어서였다. 부르주아지가 낡은 것(자신의 지위가 허물어졌음을 인정하기 거부한 구사회의 대표자들)과 너무 새로운 것(1789년의 새로운 구조 자체도 이미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더 새로운 집단)에 대해 보다 우월한 자신의 생명력을 증명.
→ 1789년 이후 프랑스의 사회 구조에서 전개된 내부적 모순은 제3공화국에 와서야 상대적인 정도로 해결된다. 즉 프랑스는 1789, 1794, 1799, 1804, 1815, 1830, 1848, 1870년 등 그 간격이 계속 길어지면서 발생한 격동들로 점철된 80여 년을 보낸 후에야 약 60여 년에 이르는 안정된 정치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간이 계속 변한 ‘간격들’을 연구함으로써 한편으로 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구조에서의 유기적 운동과 국면적 운동 사이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정치 세력들의 관계: 여러 사회계급들이 성취한 동질성·자기의식 및 조직의 정도에 대한 평가
① 경제적·조합주의적 수준(직업적 집단의 성원들이 통일성과 동질성을 의식하고 그 집단을 조직해야 할 필요성) → ② 어떤 사회계급의 모든 성원 사이의 이해(利害)의 연대성에 미치지만 경제적 분야에 한정 → ③ 한 집단이 자신의 조합주의적 이익이 현재와 미래의 발전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의 순수 경제적인 계급의 조합주의적 한계를 벗어나 다른 종속적 집단들의 이익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계기. 정치적·경제적 목표의 일치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지적·도덕적 통일성을 확보하고, 조합주의적이 아닌 ‘보편적’ 지평 위에서 수행되는 투쟁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며, 결국 한 기본적 사회집단의 일련의 종속적 집단들에 대한 헤게모니를 창출한다.

– 경제적 위기가 스스로 기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산출한다는 것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거짓: 그러한 위기는 특정 사고양식과 이후의 모든 국민적 생활의 발전을 포함하는 문제들을 제기·해결하는 특정 방식이 확산되는 데 유리한 지형을 만들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마티에(Mathiez)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적 설명 속에서 사회적 균형이 붕괴되는 모든 주요 시간마다 그와 일치하는 경제적 위기를 선험적으로 ‘발견’하는 전통적인 속류 역사에 반대하며, 1789년경에는 경제적 상황이 오히려 좋은 편이었으며, 따라서 궁핍화의 위기 때문에 절대국가가 붕괴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

– 붕괴는 직접적 경제 세계보다는 더 고급한 수준에서의 갈등─곧 계급 위신(미래의 경제적 이익)과 관계된 갈등, 그리고 독립과 자율과 권력에의 감정에 불을 당긴 갈등─을 맥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사회적 세력관계의 정치적 세력관계로의 이행, 최종적으로는 결정적인 군사적 관계로의 이행.

– 분석은 저항이 최소로 되는 지점, 의지의 힘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지점을 밝혀주고, 직접적 전술 활동을 제시하며 정치적 선동의 구호를 가장 효과적으로 던지는 방법, 대중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모든 상황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어떤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즉각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항구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장기적으로 준비된 세력이다(그리고 어떤 상황이 유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러한 세력이 존재하였고 또 전투 정신으로 충만하였을 때뿐이다).

6. 관료주의

– ‘유기성’은 오직 민주적 집중주의, 말하자면 운동하는 집중주의 속에서만 발견된다. 조직을 실제의 운동에 부단히 재적응시키고, 밑으로부터의 요구를 위로부터의 명령과 화합시키며, 대중의 밑바닥으로부터 떠오르는 인자들을 경험의 정규적인 축적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견고한 지도기구의 틀 속으로 끊임없이 투입시키는 집중주의에서만이 ‘유기성’이 발견된다.

– 국가에서 관료적 집중주의가 만연하다는 것은, 지도집단이 포화되었다는 것, 지도집단이 반대 세력의 등장을 견제하거나 압살시켜서라도 자신의 이기주의적 특권을 영속시키고자 하는 인색한 하나의 파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뜻한다. 관료적 집중주의라는 불건강한 징표가 나타나는 것은 저변부의 창의성과 책임감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 다시 말해 주변적 세력들의 정치적 미성숙 때문이다.

– 민주적 집중주의는 표면상 서로 달라 보이는 형태 속에서 똑같은 것을 비판적으로 추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것 속에서 서로 다르고 대립되기조차 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것은 비슷한 것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조직하되, 그 연관지음과 조직화가 합리주의적·연역적·추상적인 과정의─순수 지식인(또는 순수 바보)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결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귀납적’·경험적인 요구에 따라 행해지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7. 고정비례의 정리, 수(數)와 질(質), 집단의지, 유기적 연속성

– 고정비례의 정리는 정당이나 노동조합 또는 공장에서 정치적으로 적용된다. 판탈레오니의 «순수경제학 원리»: 조직체는 오직 고정된 비례에 따라서만 화학적으로 결합. 이미 정해진 양보다 어떤 요소가 더 많으면 남는 만큼의 양은 결합되지 않는다. 어떤 요소의 양이 다른 요소의 양과 관련하여 불충분하면, 결합은 오직 더 적은 쪽 요소의 양의 한도 내에서만 일어난다.
→ 비유적으로 사용: 정당이란 어떤 특정한 사회집단(어떤 사회집단도 그 구성원의 양은 측정될 수 있다)이 불안정한 혼돈에서부터 체계화되고 유기적으로 준비된 정치적 군대가 되는 데에 필요한 지도자들을 선별하고 계발하는 대량적 기능이다. 어떤 정당이 지방선거에서는 표를 많이 얻지만 정치적 중요성이 더 큰 선거에서는 표를 조금밖에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중앙지도부가 취약해서일 것이다. 곧 하급 요원은 충분하지만 그 나라, 또는 그 나라의 국제적 위치에 부응하는 총참모부의 부재.

– “사회는 그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는 일이 없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이 명제는 집단적 의지의 형성이라는 문제를 즉각 제기한다. 이 명제가 뜻하는 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집단의지가 어떻게 형성되며 그러한 의지는 어떤 식으로 구체적인 장·단기적 목표─곧 집단적 행동의 방향─를 설정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 집단의지의 형성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정당, 또는 관련 정당들 간의 연합이라는 식으로 제기된다. 곧 정당은 처음에 어떻게 성립되며 조직적인 힘과 사회적 영향력은 어떻게 발전하여 가는가 하는 식으로 제기된다.

– 유기적 연속성: 적극적인 뜻에서의 전통, 곧 끊임없는 발전 속에서의 연속성. 이때의 발전은 유기적 발전. 법적인 문제는 집단 전체를 그 집단의 가장 앞선 부분에 동화시키는 문제가 된다. 대중을 교육시키는 문제이며 달성되어야 할 목표가 요구되는 바에 따라 대중을 적응시키는 문제. 국가와 사회에서 ‘법률’이 수행하는 기능.

– 실제에서 윤리적 문제란, 각 개인의 행위와 동의 사이에, 각 개인의 행위와 사회가 요구하는 목표 사이에, ‘자발적이고도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일치가 있는가에 관한 문제. 여론과 도덕적 분위기로 인해 ‘강제’가 수행되는 영역에서의 일치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엄밀히 말해 윤리적인) 사항이다.
→ 유기적 연속성을 위해서는 잘 정리되어 있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서고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모든 과거가 재조명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결과를 표명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은 ‘유기적 결의문’이라기보다는 해설적이고 이성에 호소하는 (교육적인) 안내문이다.

– 모든 유기적 연속성은 ‘관료화’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은 사실이며 따라서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불연속성과 즉흥성의 위험은 연속성에 내재된 위험보다 더 큰 것이다.

8. 자생성과 의식적 지도

– 프랑스 생디칼리스트들의 비정치주의: 자생성은 역사적 과정의 내재적이고도 객관적인 ‘방식’(순수 ‘이데올로기’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요소와 자생성을 ‘정치적’ 방식으로 주장하는 정치적 모험가들(실제적인 행동의 영역)이라는 요소가 모두 포함. 비정치주의는 1871년 파리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의 결과였고, 프랑스 노동계급의 수동성의 30년(1870~1900)의 연속이었을 뿐 거기에 새로운 방식과 반짝이는 이론을 첨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 정치적 행동이라는 것이, 단지 스스로 대중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집단들의 모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대중정치인 한에서는, ‘자생성’과 ‘의식적 지도’ 또는 ‘규율’의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하위계급들의 정치적 행동이다.
→ ‘자생적’이라 함은 그 생각이 의식적 지도집단의 일부로 인해 수행된 어떤 체계적 교육 활동의 결과로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상식, 곧 전통적·대중적인 세계 개념에─이것 또한 저급하고 초보적인 역사적 획득물이지만, 편의상 ‘본능’이라고 하기도 한다─따른 일상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 ‘자생적’인 운동을 무시한다거나 경멸하기까지 한다는 것, 다시 말해 그 운동에 의식적 지도를 부여한다거나 그 운동을 정치 속으로 끌어들여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은, 자주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위계급들의 ‘자생적’ 운동이 여러 가지 까닭으로 인해 지배계급 우파의 반동적 운동과 동반하게 되는 것은 대체로 그런 경우이다.
→ 예컨대 경제위기는 한편으로는 하위계급들 사이에서의 불만을 일으켜 자생적인 대중운동을 촉발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의 객관적 약화를 틈타 쿠데타를 일으키고자 하는 반동적 집단들의 음모에도 좋은 기회가 된다. 쿠데타의 유효한 원인들 중에는, 책임 있는 집단이 자생적인 봉기에 의식적 지도를 부가한다거나 자생적 봉기를 적극적인 정치적 요인으로 전환시킨다거나 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점이 반드시 포함된다.

– 폭넓은 대중계층이 참여하는 ‘자생적’ 운동은 국가를 객관적으로 약화시킴으로써 하위계급들 중 가장 진보적인 하위계급이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그래도 진보적인 경우다. 그러나 현대세계에서는 반동적인 경우가 더 흔하다.

9. 집단적 노동자,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와 사회대중

– 집단적 노동자: 직능별 조직에 대립 또는 독립적으로 공장을 하나의 단위로 삼고자 했던 운동(공장평의회 운동)은 «정치경제학 비판»(자본론 제1권의 14, 15장)에 나와 있는 공장쳬계가 발전해 온 과정에 대한 분석과 완벽하게 조응했다.
→ 서로 잘 협조하고 잘 조직된 노동은 ‘사회적’ 생산성을 훨씬 높인다. 한 공장의 총체적인 노동력이 스스로를 한 명의 ‘집단적 노동자’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주체성을 부여하고자 한 공장운동의 전제. 개별 노동자에게서 기술적 발전이라는 조건과 지배계급의 이해 사이의 연결은 ‘객관적’이다. 그 연결은 해체될 수 있다.
→ 그러한 ‘분열’과 새로운 종합이 역사적으로 성숙하였다는 증거: 종속적 계급이 그러한 분열과 새로운 종합의 과정을 이해하였다는 사실.
→ 집단적 노동자가 얻은 이러한 의식은, 공장이 이윤의 생산자가 아니라 실물의 생산자로 등장하는 사회가 될 때 대의적·정치적으로 표현된다.

– 자원자(volunteer)적 행동이 수반되는 해결책은 권위적인, 위에서 아래로의 해결책이며 ‘가장 훌륭한’ 인자라고 주장되는 자들의 동의로 인해 형식적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지속적인 역사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가장 훌륭한’ 인자만으로는 부족하며 더 크고 더 많은 국민적·민중적 에네르기가 요구된다.
→ 국민적·민중적 대중을 국가에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니는 일이 추상적으로 파악된 ‘국민’ 속에서 ‘자원자들’을 선별하는 일로 대체된다. 마키아벨리가 믿을 수 없고 일시적일 뿐인 용병부대를 국민군으로 대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기한 문제는 ‘주의주의(voluntarism)’가 대중의 ‘국민적·민중적’ 행동으로 대체될 때까지는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임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주의주의는 중간적이고 수상한 해결책이며 용병부대만큼이나 위험한 현상이기 때문이다(그람시가 리소르지멘토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에 주석을 다는 과정에서 파시즘에 대해 애매하게 언급한 부분).

– 자원자들(volunteers)의 행동과 조직은 동질적인 사회적 블록들의 행동 및 조직과는 구별된다: ‘자원자들’이란 사회 대중의 유기적 표현인 엘리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개인적으로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때로는 대중과 적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중에 대해 중립을 지키기도 하는 자들.
→ 이탈리아 정치정당들은 언제나 ‘자원자들’(어떤 듯에서는 낙오자들)의 정당이었다(불만족한 지식인들, 농촌의 임금노동자 대중과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 마치니와 가리발디의 행동당은 이후 이탈리아 대중정당들의 원형이었지만, 진정한 대중정당이 아니었으며(동질적인 사회집단들을 조직한 것이 아니었다) 집시집단이나 유목민에나 해당하는 정치적 등가물이었다.

– 보르디가의 입장은 행동당의 입장, 곧 집시나 유목민류의 입장과 매우 비슷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매우 피상적이며 처음부터 문제성 있는 것이었다. 곧 체계적이지도, 유기적이거나 일관적이지도 않았으며, 사회적 동질성을 지향했던 것이 아니라 온정주의적·형식주의적인 것이었다.

–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인 엘리트라는 개념과, 국민적·민중적 대중에 유기적으로 연관되었음을 의식하는 지식인 개념도 구분된다. 허위적 영웅주의와 유사 귀족주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며, 동질적·응집적인 사회적 블록의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출처: 한국어판, 이상훈 역, 1986(제1판), 2006(제5판), 거름 [영문판 원본: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71; 1978), translated by Quintin Hoare, Geoffrey Nowell Smith]


생각해 볼 문제들>

1. 프랑스혁명 당시 자코뱅주의의 역사적 배경, 경과, 귀결
2. 크로체의 정치 이해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관계, 생디칼리즘의 문제들
3. 자유교역사상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생디칼리즘은 왜 자유방임주의의 일부로서 지배계급의 지적 헤게모니에 희생당하게 되는가?
4. 마르크스의 구조와 상부구조 분석에 대한 이해
5. 정당정신이 국가정신의 기본요소라는 그람시의 주장과 당시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이해
6. “인간이 경제세계에서 갈등을 의식하는 것은 이념의 수준에서이다”(«정치경제학 비판»의 서문)라는 주장의 구체적 의미: 이 주장의 논지가 심리학적·도덕적 성격의 주장이 아니라 구조적·인식론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정치를, 역사도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속임수 거래, 마술과 손재주의 경쟁이라고 여기는 습관을 만든다. 그래서 ‘비판적’ 활동은 사기협잡의 폭로, 추문의 유포, 저명인사의 호주머니 엿보기로 격하된다.
7. “사회는 그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는 일이 없다”(«정치경제학 비판»의 서문)는 명제와 집단의지의 형성, 정당의 문제
8. 1789~1871년의 프랑스 상황, 비정치주의의 등장, 프랑스 노동계급의 수동성(1870~1900)의 30년
9. 그람시의 주장: 경제적 위기가 스스로 기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산출한다는 것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거짓이다. 붕괴는 더 고급한 수준들에서의 갈등, 즉 계급 위신(미래의 경제적 이익)과 관계된 갈등, 그리고 독립과 자율과 권력에의 감정에 불을 당긴 갈등을 맥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 역사적 사례에 대해 조사해 보자.
10. 민주적 집중주의는 비슷한 것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조직하되, 합리주의적·연역적·추상적인 과정의(순수 지식인 또는 순수 바보에게 전형적으로 보이는 것) 결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귀납적·경험적인 요구에 따라 행해지게끔 한다. → 정당, 국가와 민주주의, 관료주의 문제
11. 정당에 대한 고정비례의 원리의 비유적 적용: 정당이라는 어떤 특정한 사회집단이 불안정한 혼돈에서부터 체계화되고 유기적으로 준비된 정치적 군대가 되는 데에 필요한 지도자들을 선별하고 계발하는 대량적 기능.
12. ‘자생적’ 운동에 의식적 지도를 부여하고 그 운동을 정치 속으로 끌어들여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반동적 운동이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 사례들을 조사할 필요성.
13. 집단적 노동자와 공장평의회 운동: 개별 노동자에게서 기술적 발전이라는 조건과 지배계급의 이해 사이의 연결은 ‘객관적’이다. 그 연결은 해체될 수 있다. 공장이 이윤의 생산자가 아니라 실물의 생산자로 등장하는 사회에 대한 전망.
14. 이탈리아 정당과 자원자들(volunteers), 주의주의(voluntarism), 보르디가의 노동조합에 대한 잘못된 이해, 유기적 연관을 이해하는 지식인, 동질적·응집적인 사회적 블록 형성의 문제를 검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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