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사용한 실천철학(filosofia della praxis; philosophy of praxis)이라는 용어는 마르크스주의를 뜻한다. 이 용어를 처음 도입한 사람은 라브리올라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진수를 이론과 실천의 독특한 연관에서 찾았다. 그람시가 이러한 ‘실천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는 옥중 검열을 통과하려는 의도 역시 포함되어 있다.
– 베네데토 크로체는 라브리올라의 제자로서 파시스트 등장 이전 시기에 젊은 좌익 지식인에게 큰 영향력을 미쳤으나 1920년대 초 무솔리니를 지지한 바 있다. 또한 크로체는 프랑스 생디칼리즘의 이론가 조르주 소렐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했다.
– 그람시는 대립물의 투쟁이라는 역사 운동을 ‘차이물의 변증법(dialectic of distincts)’이라는 개념적 변증법으로 환원시킨 크로체를 비판한다. 크로체가 정치학은 어떤 철학적 가치도 갖지 않는 단순한 ‘정열’로 변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람시 사상에서 정치는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 활동의 요체이며, 개별 의식의 모든 형태의 사회적·자연적 세계와 접촉을 맺는 수단이다.
– 그람시가 고찰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탈리아 지식인의 문제들, 그들의 지방주의와 세계주의, 교회와 국가의 권력 구조에서 그들이 수행한 역할들이었다. 그는 성장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힘과 관련하여 지식인이 어떻게 ‘민족적·민중적’ 의식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이탈리아 인텔리겐치아의 허약성을 현실성 있게 평가하는 데서 출발했다.
– 그람시는 이탈리아 사회당 내 코뮤니스트 동료들인 타스카, 톨리아티, 테라치니와 함께 사회주의 문화평론지 <<오르디네 누오보(Ordine Nuovo): 신질서>> 창간을 주도한다. ‘오르디네 누오보’ 그룹은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당을 주도한다.
– 그람시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대중적 기초를 확보하기 위한 주요 문제들을 제기한다. 즉 소비에트 권력을 향한 매개로서 노동자·농민 연방공화국의 집중 선전, 북부 노동자와 남부 농민의 견고한 동맹을 위해 노동귀족의 개량주의와 투쟁, 농민이 집중된 남부에서 무장투쟁 조직 방법 연구, 내부 분열을 지양하기 위한 당 내 정치 프로그램 개발 등이다.
– 그람시에게 정당은 혁명적 대중의 자발적 운동과 조직·지도하고자 하는 중앙의 의지가 수렴하여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과정의 결과였다.
–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중심 문제가 새로운 국가 또는 국민적·사회적 구조의 건설이라고 파악했다. 마키아벨리는 국민군 개혁을 통해 민족적(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조숙한 자코뱅주의자였다. 자코뱅주의는 이러한 집단의지가 전적으로 새롭게 작동된 예이며, 집단의지와 정치적 의지는 역사적 필요성에 대한 능동적 자각으로서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군주는 현대에는 정치정당이라고 보았다.
– 실천철학은 국민적·민중적 집단의지가 현대 문명의 우월하고 전체적인 형태를 실현하는 쪽으로 발전해 나갈 지형을 창출했다. 경제적 개혁의 강령이야말로 모든 지적·도덕적 개혁이 표현되는 구체적 형태이다.
– 마키아벨리와 실천철학(마르크스주의)은, 전통적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통일이 깨어지기 전에는 새로운 세력들이 자신 자신의 독립적 성격에 대한 의식에 이르지 못한다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 크로체의 정치의 계기로서의 정열은 영속적인 정치적 구성체(정당, 국민군, 총참모부 등)를 해명하고 합리화하는 데서 난관에 부딪힌다. 정열이 합리성과 신중한 사고, 따라서 더 이상 정열이 아닌 어떤 것이 되지 않고서도 영속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해결책은 정치를 경제와 동일화하는 데서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영속적 행동).
– 의회제도는 민족해방의 과정과 근대적인(독립적이고 국민적인) 영토적 국가로의 이행에 형식을 제공한다. 프랑스 자코뱅주의는 농민적 소유의 경제적·사회적 중요성을 주장한 중농주의 문화라는 전제가 있기에 가능했다. 마키아벨리는 도시를 농촌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자신의 강령과 의견을 군사적 용어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해할 만하다.
– ‘국가정신(헤겔의 용어)’은 과거 또는 전통과의, 아니면 미래와의 ‘연속성’을 전제로 한다. 외형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스스로 적극적이며 언제나 준비되었다고 느끼는 세력들과 연대하였다는 책임이야말로 어떤 뜻에서 ‘국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지속(duration)’에 대한 자각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 정당이 존재하기 위한 세 가지 기본 요소들
i) 일반적·평균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대중적인 요소: 충성과 규율의 형태. 이들을 집결시키고 조직하며 훈련시키는 누군가가 있는 한에서만 세력이 된다.
ii) 중요한 응집적 요소: 세력들의 복합체를 전국적으로 집중시켜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만든다. 일정한 노선, 전망, 전제에 따로 일정한 방향의 혁신의 힘을 지닌다.
iii) 중간적인 요소: 첫 번째와 두 번째 요소를 연결시키고 두 가지 사이의 접촉을 도덕적·지적으로 유지시킨다.
세 요소 사이에 ‘고정된 비율’이 실현되었을 때 정당의 효율성이 가장 커진다. 두 번째 요소는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였을 때 나타나고 다른 두 개 요소가 형성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정당을 깨뜨릴 수 없는 때이다.
– 대기업가들은 세력들 간의 확실한 균형에 관심을 둔다. 이번에는 이 정당, 다음에는 저 정당 하는 식으로 번갈아 어느 하나를 강화시킴으로써 이러한 균형을 얻는다. 영국에서는 보수당(지주들의 영속적 정당)이 전통적으로 기업가들의 정당이라 여긴 자유당을 흡수하였다. 지주들이 기업가들보다 ‘정치적으로’ 훨씬 더 조직되어 있고 기업가들보다 더 많은 지식인을 흡수하였으며, 그들의 지도가 기업가들의 지도보다 더 지속적이다.
– 자유교역운동 사상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각각 단일한 유기체인 양 제시. 경제적 활동은 시민사회에 속하는 것이고 국가는 경제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민사회와 국가는 일체요 똑같은 것이다. 자유방임 자유주의는 하나의 정치적 강령이며 국가의 지도적 인물을 바꾸고 국가 자체의 경제적 강령(국민소득의 분배)을 변화시키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 이론적 생디칼리즘은 단지 자유방임 자유주의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으며 실천철학으로부터 몇 가지 불구화(진부화)된 테제를 빌려와 스스로를 정당화한 것이다.
– 엥겔스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인간은 기본적 갈등을 이념의 수준에서 의식한다’(<<정치경제학 비판>> 서문)는 논지가 심리학적·도덕적 주장이 아닌 구조적·인식론적인 성격의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렸다. 그러한 사람들은 정치를, 역사도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속임수 거래, 마술과 손재주의 경쟁이라고 여기는 습관을 만든다. 그래서 ‘비판적’ 활동은 사기 협잡의 폭로, 추문의 유모, 저명인사의 호주머니 엿보기로 격하된다.
– 경제주의에 대한 공격은 역사 기술의 이론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의 이론과 실천에서도 수행되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의 투쟁은 헤게모니 개념의 전개로 인해 수행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수행되어야 한다: 레닌의 정치정당 이론의 전개(<<무엇을 할 것인가>>), 영구혁명론에 대한 투쟁으로서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 개념 제시, 입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지의 정도.
– 특정 시기 역사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을 분석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상부구조 사이의 관계가 정확히 제시·해결되어야 한다: “사물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 과제는 그것이 해결되기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였거나 아니면 적어도 형성 과정에 있을 때에만 제기된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 프랑스의 1789~1871년 시기를 전체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789년의 모든 맹아가 역사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것은 코뮌의 기도가 있었던 1870~1871년이 되어서였다: 부르주아지가 보다 우월한 자신의 생명력을 증명.
– 프랑스는 1789, 1794, 1799, 1804, 1815, 1830, 1848, 1870년 등 그 간격이 계속 길어지면서 발생한 격동들로 점철된 80여 년을 보낸 후에야 60여 년에 이르는 안정된 정치생활을 누린다. 이러한 기간이 계속 변한 ‘간격들’을 연구함으로써 한편으로 구조와 상부구조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 구조에서의 유기적 운동과 국면적 운동 사이의 관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경제적 위기가 스스로 기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산출한다는 것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거짓이다. 마티에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적 설명 속에서 사회적 균형이 붕괴되는 모든 주요 시간마다 그와 일치하는 경제적 위기를 선험적으로 ‘발견’하는 전통적인 속류 역사에 반대하며, 1789년경에는 경제적 상황이 오히려 좋은 편이었으며, 따라서 궁핍화의 위기 대문에 절대국가가 붕괴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
– 붕괴는 직접적 경제 세계보다는 더 고급한 수준에서의 갈등, 곧 계급 위신(미래의 경제적 이익)과 관계된 갈등, 그리고 독립과 자율과 권력에의 감정에 불을 당긴 갈등을 맥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사회적 세력 관계의 정치적 세력 관계로의 이행, 최종적으로는 결정적인 군사적 관계로의 이행.
– 모든 상황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어떤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 즉각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항구적으로 조직되어 있고 장기적으로 준비된 세력이다(그리고 어떤 상황이 유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러한 세력이 존재하였고 또 전투 정신으로 충만하였을 때뿐이다).
– 민주적 집중주의는 표면상 서로 달라 보이는 형태 속에서 똑같은 것을 비판적으로 추구하고, 똑같아 보이는 것 속에서 서로 다르고 대립되기조차 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것은 비슷한 것을 서로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조직하되, 그 연관지음과 조직화가 합리주의적·연역적·추상적인 과정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실천적·‘귀납적’·경험적인 요구에 따라 행해지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 판탈레오니의 <<순수경제학 원리>>: 조직체는 오직 고정된 비례에 따라서만 화학적으로결합. 어떤 요소의 양이 다른 요소의 양과 관련하여 불충분하면, 결합은 오직 더 적은 쪽 요소의 양의 한도 내에서만 일어난다. 비유적으로 사용하면 정당은 어떤 특정한 사회집단이 불안정한 혼돈에서부터 체계화되고 유기적으로 준비된 정치적 군대가 되는 데에 필요한 지도자들을 선별하고 개발하는 대량적인 기능이다.
– “사회는 그 해결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는 일이 없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 서문). 이 명제가 뜻하는 바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집단의지가 어떻게 형성되며 그러한 의지는 어떤 식으로 구체적인 장단기적 목표(집단적행동의 방향)를 설정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집단의지의 형성이라는 문제는 오늘날 정당 또는 관련 정당들 간의 연합이라는 식으로 제기된다.
– 정치적 행동이라는 것이, 단지 스스로 대중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집단들의 모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대중정치인 한에서는, ‘자생성’과 ‘의식적 지도’ 또는 ‘규율’의 통일이야말로 진정한 하위 계급들의 행동이다.
– ‘자생적’ 운동에 의식적 지도를 부여한다거나 그 운동을 정치 속으로끌어들여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은, 자주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위 계급들의 ‘자생적’ 운동이 여러 가지 까닭으로 지배계급 우파의 반동적 운동과 동반하게 되는 것은 대체로 그런 경우이다.
– 공장평의회 운동은 <<정치경제학 비판>>(자본론 1권 14, 15장)에 나와 있는 공장체계가 발전해 온 과정에 대한 분석과 완벽하게 조응했다. 서로 잘 협조하고 잘 조직된 운동은 ‘사회적’ 생산성을 훨씬 높인다: 한 공장의 총체적인 노동력이 스스로를 한 명의 ‘집단적 노동자’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주체성을 부여하고자 한 공장운동의 전제: 개별 노동자에게서 기술적 발전이라는 조건과 지배계급의 이해 사이의 연결은 ‘객관적’이다. 그 연결은 해체될 수 있다.
– 종속적 계급이 그러한 분열과 새로운 종합의 과정을 이해하였다는 사실에 따라 집단적 노동자가 얻은 이러한 의식도 공장이 이윤의 생산자가 아니라 실물의 생산자로 등장하는 사회가 될 때 대의적·정치적으로 표현된다.
– 자원자들(volunteers)의 행동과 조직은 동질적인 사회적 블록의 행동과 조직과는 구별된다: ‘자원자들’이란 사회 대중의 유기적 표현인 엘리트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개인적으로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때로는 대중과 적대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중에 대해 중립을 지키기도 하는 자들. 이탈리아 정당들은 언제나 ‘자원자들’(어떤 뜻에서는 낙오자들)의 정당이었다(불만족한 지식인들, 농촌의 임금노동자 대중과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 보르디가의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매우 피상적이며 처음부터 문제성 있는 것이었다. 곧 체계적이지도, 유기적이거나 일관적이지도 않았으며, 사회적 동질성을 지향했던 것이 아니라 온정주의적·형식주의적인 것이었다.
–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지식인 엘리트라는 개념과, 국민적·민중적 대중에 유기적으로 연관되었음을 의식하는 지식인 개념은 구분된다. 허위적 영웅주의와 유사 귀족주의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며, 동질적 응집적인 사회적 블록의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정당의 이론적·교의적 활동이 없이는, 즉 대표되는 계급의 속성을 규제하는 여러 원인들과 그 계급이 발전해 온 경로에 대한 탐색과 연구를 위한 체계적 노력 없이는 지도자들의 형성이란 있을 수 없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총파업‒당과 노동조합>>에서 다소 성급하고 피상적으로 1905년의 경험을 이론화하면서, ‘주의(主意)적’이고 조직적인 요소들을 무시했지만 이는 경제적 결정론의 한 형태이다. 주의적이고 조직적인 요소들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폭넓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 가장 발전된 나라들의 경우에는 ‘시민사회’가 직접적인 경제적 요소(공황·불황)의 파국적 ‘기습’에 저항할 수 있는 복합적 구조로 성장하였다. 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는 근대적 전쟁에서의 참호 체계와 같다.
–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이었고 시민사회는 아직 원시적이고 무정형한 것이었지만, 서구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고, 국가가 동요할 때는 당장에 시민사회의 견고한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1870년 이후 유럽이 식민지적 팽창으로 나선 이래, 국가의 국내적·국제적인 조직적 관계들은 한층 더 복합적·대량적인 것이 되며, ‘영구혁명’이라는 공식은 ‘시민적 헤게모니’라는 정식 속으로 극복된다. 현대 민주주의의 대량적 구조들은 정치 기술상 진지전의 전선에 설치된 ‘참호’와 항구적인 요새를 구성한다.
– 그람시는 ‘조절된(regulated)’ 사회를 공산주의를 뜻하는 말로 쓴다. 엥겔스는 “사회가 생산수단을 장악함에 따라 상품 생산은 폐지되며 그와 동시에 생산자에 대한 생산물의 지배도 없어진다. 사회적 생산에서의 무정부는 체계적이고 명확한 조직에 의해 대체된다”라고 썼다. 그러나 그람시는 사실상의 질서와 조화는 오직 공산주의하에서만 가능하며 그때까지는 계급국가(자본주의)가 계속될 것이고 따라서 ‘조절된’ 사회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 현실에서 윤리적 국가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가의 종식과 자기 자신의 계급의 종식을 이룩하여야 할 목표로서 선정하는 사회집단―곧 피치자의 내부적 분열을 끝내고 기술적·도덕적으로 단일한 사회적 유기체를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집단―뿐이다.
– 윤리적 국가라는 개념은 철학적·지적 뿌리를 지녔는데(헤겔) 사실상 야경꾼 국가라는 개념과 연결될 수 있다. 이 개념은 중세적 잔재로서의 세계시민주의와 종교적·성직자적 조직의 간섭과 대립하는, 세속국가의 자율적·교육적·도덕적인 활동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자유주의 국가를 ‘야경꾼’이라고 표현한 것은 라쌀(Lassalle), 곧 독단적·비변증법적인 국가주의자에게서 비롯되었다(라쌀의 견해를 마르크스주의와 견주어 살펴봐야 한다). 조절된 사회로서의 국가라는 입장에서는, ‘국가’와 ‘지배’가 똑같은 국면과 ‘국가’와 ‘시민사회’가 동일시되는 국면에서부터 야경꾼으로서의 국가라는 국면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 야경꾼으로서의 국가란, 조절된 사회의 요소가 지속적으로 확산·발전될 수 있도록 보호하며, 점차로 자기 자신의 권위주의적·강제적인 개입을 축소시켜 나가는 강제적 조직을 말한다. 이것은 새로운 유기적 자유 시대의 개막이 임박함을 알리는 것이기는 해도, 새로운 ‘자유주의’ 사상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 자율적인 국가 생활로 떠오른 사회집단이 이전에는 독립적으로 독자적인 문화적·도덕적 발전을 수행한 기간이 길지 않을 경우, 국가 숭배는 적어도 자율적인 국가 생활과 ‘시민사회’의 창출을 위한 입문이다. 독립적인 국가 생활로 떠오르기 전에는 시민사회의 창출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숭배’가 그대로 방치되거나 특히 이론적 광신주의가 된다든가, 또는 ‘영속성’인 것으로 여긴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새로운 국가 생활의 형태, 곧 ‘관료에 의한 지배’가 없어도 개인들과 집단들의 활동이 스스로 ‘국가’적인 성격을 지닐 형태를 발전시키고 산출하기 위해서(국가 생활이 ‘자발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야말로 국가 숭배는 끊임없이 비판되어야 한다.
– 자율적인 세력으로 파악되는 국가=정부가 그것이 기초하는 계급에게 위신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이론적·실천적으로 대단히 큰 중요성을 지닌다. 그것은 엘리트 또는 전위, 다시 말하여 한 정당이 자신이 대표하는 계급과의 관계에서 수행하는 기능 속으로 통합될 수 있는 것 같다.
– 이탈리아는 문화적 통일이 리소르지멘토와 국민적 통일의 기초였으며 바로 그러한 점이 국민적 통일의 약점이었다. 이 심성에서는 정치·군사적 또는 정치·경제적 요소, 곧 프랑스·독일·미국의 국민주의적 심리의 기초가 되는 요소가 부족하여서 그 결과 많은 ‘반체제자들’과 ‘국제주의자들’이 ‘국수주의자’이면서도 아무런 모순점도 느끼지 못한다.
– 지배계급이 합의를 상실하는 것, 더 이상 지도적이지 못하고 단지 ‘지배적’·강제적인 힘만 쓴다는 것은, 거대한 대중이 자신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로부터 멀어져 이전에 믿었던 것을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그람시가 보기에 ‘포드주의적’인 노동의 강화와 합리화 정책은 자본주의적 축적이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착취율을 상승시키려는 노력이다. 미국주의를 위한 예비 조건은 생산 세계에서 어떠한 긴요한 노동도 하지 않는 기생적인 많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합리적인 인구학적 구성’이다. 유럽의 ‘전통’이나 ‘문명’은 그러한 계급이 많이 존재한다(문관 요인과 지식인, 성직자와 지주, 해적적인 상인과 직업 군인들의 포화와 화석화).
– 이탈리아 인구의 60%가 국가 예산(연금 등)에 의지하여 살고, 장기적 이민과 여성의 낮은 고용 비율, 풍토병, 하층 농민의 영양 부족, 실업, 기생적인 인구 부분과 이들을 떠받치는 기생적 대중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유럽에 존재.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에는 더욱 나쁜 형태로 존재. 이러한 사실들이 그 나라들의 역사적 침체와 정치·군사적 무기력을 설명한다.
– 미국에서는 프랑스 혁명의 경제적 영역에서와 같은 역사적 단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중은 후진적 상태에 있었다. 국민적 동질성 부족, 혼합된 인종·문화들과 흑인 문제들도 참작되어야 한다. ‘산업의 자유’에 대한 동업조합(craft)의 권리 보호 투쟁 단계. 노동조합은 기능 직인의 권리에 대한 조합주의적 표현이었고, 자유로운 노동조합은 거의 해체되다시피 하며 고립된 공장 단윙의 노동자 조직체가 들어섰다.
– 미국화를 위해서는 특정한 국가, 즉 자유주의적인 국가가 요구된다. 자유교역 자유주의나 시실적인 정치적 자유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기업 활동과 경제적 개인주의라는 뜻에서의 자유주의 국가. 이것은 ‘시민사회’의 수준에서 역사의 발전을 통하여 독자적인 방식으로 기업의 집중과 독점이라는 제도에 이를 것이다.
– 조합체적 조류는 이탈리아 자본주의의 합리화 지향의 요소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가톨릭과 개량적인 사회주의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았다. 무솔리니하에서, 특히 1930년 이후에 추진된 조합체적 경제는 이러한 비파시즘적인 운동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 성적 영역에서의 일면적인 강제로 인하여 일으킨 모든 위기는 ‘낭만적인’ 반동을 분출시키며 이것은 조직화된 합법적인 매춘의 폐기로 인하여 더욱 악화될 수 있다. 성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제한도, 그리고 생산과 작업의 새로운 방식에 적합한 새로운 성적 윤리를 만들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도 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된다.
– 미국 기업가들(특히 포드)이 고용한 사람들의 성적인 모든 문제와 가정 문제 일반에 간여한 이유는 주류의 제조와 판매 금지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작업의 합리화로 인하여 요구되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성적 본능이 제한되기 전에는, 즉 성적 본능 또한 합리화되기 전에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
– 포드와 같은 미국 기업가들의 ‘청교도적인’ 노력은 생산적 ‘창조’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노동자의 인간성과 정신성을 파괴한다. 미국의 기업가들은 노동자의 신체적 근육과 신경적 효율성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안정되고 숙련된 노동력은 그들의 이익에 맞기 때문이다. 고임금은 숙련된 노동력을 선별하고 안정되게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 알코올 중독 다음으로 성적 기능의 남용과 불규칙성이 신경적 에너지의 가장 위험한 적인데 ‘강박적인’ 작업이 알코올 중독과 성적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포드가 일군의 감독관들의 도움을 받아 자기 고용인들의 사적 생활에 개입하여 그들의 지출 방식과 생활 방식을 통제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이러한 경향들의 한 징표이다.
– 새로운 산업주의는 일부일처제를 원하는 것임에 틀립없으며, 그것은 노동자로서의 인간이 우연한 성적 만족을 위한 무질서하고 자극적인 향락을 위하여 자신의 신경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열에 대한 찬양은 가장 완벽한 자동화와 연결된 생산 활동의 규정된 움직임과 화해할 수 없다.
– 식자공이 문헌의 지적인 내용으로부터 오직 문자적인 상징만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해야만 하는 노고라는 것은, 아마도 다른 어떤 직업에서도 필요한 가장 어려운 요구 조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기계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정신적 죽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단 적응 과정만 완료되면 노동자의 두뇌는 화석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벽한 자유 상태에 다다르는 일일 벌어진다. 완벽하게 기계화되는 것은 오직 신체적인 동작뿐이다.
– 포드사의 숙련된 노동력은 매우 불안정한 것. 포드사는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다른 기업에서는 아직 요구되지 않은 특질과 자격, 하나의 새로운 형의 자격, 노동력 소비의 새로운 형태를 요구하므로 평균적인 노동시간은 양적으로 다른 회사화 똑같지만 내용은 훨씬 더 노동자를 피곤하게 하고 고갈시키므로 고임금으로도 충분히 보상될 수 없다는 것.
– 모든 기업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독특’한 것이며, 따라서 독자의 특수한 요청에 적합한 자격을 지닌 노동력을 요구한다. 이 노동력으로 인하여 실행되는 사소한 손재주·작업 비밀·‘손장난’들은 그 자체로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무수히 반복되다 보면 거대한 경제적 중요성을 지닌다.
– 국가는 국가 수단을 통하여 이루어진 투자(예를 들어 정부채)가 제대로 운용되었는가를 점검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개입한다. 인구 증가와 집단적 필요의 증대에 맞추어 생산 장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재조직해야 한다. 사적인 활동이 가장 위험에 부딪히는 곳은 바로 이 필요불가결한 생산 장치의 발전이라는 부분이며, 따라서 이 분야에서야말로 국가의 개입이 더 한층 크게 요구된다. 그 외에도 점증하는 보호주의와 자급자족적 경향, 투자 프리미엄, 덤핑, 파산 과정에 있거나 파산 위험이 있는 대기업의 구제 등 손실과 기업적 결손의 국유화.
– 프랑스의 예는 국가가 금권정치주의와 ‘일반 민중’의 두 가지 모두에 동시적으로 기초하여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순된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프랑스에서 금융자본의 지배는 프티 부르조아지와 농민 금리생활자의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기초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러나 프랑스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회적 구성을 유지하였는데, 그것은 중소 규모의 농민 재산이라는 방대한 기초가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 재건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질서로 인해 ‘폐기처분될’ 사회집단들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논리로 새로운 질서의 물질적 기초를 창출해야 할 부담을 짊어진 사회집단들에게서이다. 오늘날에는 ‘필연’인 것을 ‘자유’로 전화시키기 위해, 미국화되지 않은 독자적 생활세계를 스스로 ‘찾아가야 할’ 자들은 바로 그 사회집단이다.
출처: 한국어판, 이상훈 역, 1986(제1판), 2006(제5판), 거름 [영문판 원본: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International Publishers, New York, 1971; 1978), translated by Quintin Hoare, Geoffrey Nowell Smith]